돼지 아빠로 불리게 된 연구하는 의사광주보훈병원 심혈관센터 정명호 전문의연구실에 들어서자 전 세계에서 모인 돼지 인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인간 심장과 가장 많이 닮은 돼지 심장으로 동물실험을 거듭하여 심혈관질환 치료를 한 단계 발전시킨 정명호 전문의의 연구실이다. 그의 연구 열정을 아는 지인들이 하나둘 선물한 인형 덕에 지금은 ‘돼지 아빠’라 불리게 됐다며 그가 활짝 웃었다.
정명호 광주보훈병원 심혈관센터 전문의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메이요 대학원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쳤으며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국내 최초 세계 4대 심장학회 지도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대한심혈관중재학회, 대한심장학회 심근경색 연구회 회장, 국립심혈관센터 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진료 분야 고혈압, 동맥경화증, 협심증, 심근경색증, 심부전
심근경색증과 관상동맥 분야의 국내 권위자로 알려진 정명호 전 전남대병원 교수가 올해 3월부터 광주보훈병원 심혈관센터 의료진에 합류했다. 대학병원에서 하던 의료 연구를 더 이어 나가고 싶은 그에게 보훈병원은 그 뜻을 이룰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광주보훈병원은 수련의가 있는 병원으로 교육은 물론, 연구와 진료를 모두 할 수 있는 국가 기관입니다. 전남대병원에서 하던 심뇌혈관질환 연구와 연계해 협력할 수 있는 거점 병원이자, 전남 장성에 들어설 국립심뇌혈관센터와도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지요. 2007년부터 추진해 온 국립심뇌혈관센터 설립은 심뇌혈관질환을 예방·관리하고 치료하는 데 평생을 바쳐온 저의 오랜 꿈이기도 합니다. 센터는 지난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올해 착공될 예정인데, 광주보훈병원에 있으면서 센터가 무사히 완공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보훈병원은 제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아버님은 6.25전쟁 참전용사이신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위해 퇴임 후 여생을 보훈병원에서 봉사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요. 순환기내과는 몸 전체의 피를 순환시키는 데 필요한 심장과 혈관 계통 질환을 모두 다룬다. 흔히 알고 있는 고혈압, 고지혈증은 물론 심부전, 협심증, 부정맥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보훈병원을 찾는 고령 환자 대부분이 순환기질환을 앓는 환자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가장 대표적인 질환인데요. 혈압이 지속해서 정상보다 높게 유지되면, 혈액이 온 몸을 순환하는 데 심장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고 혈관 벽도 점점 약해집니다. 결과적으로 심뇌혈관에 악영향을 주고 다양한 합병증을 불러일으키지요. 고지혈증 또한 필요 이상으로 많은 지방 성분이 혈관 벽에 쌓이면서 염증과 심뇌혈관질환을 일으킵니다. 이 외에도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생기는 협심증과 심근경색,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긴 부정맥과 심부전 등이 주된 질환입니다. 고령화,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순환기질환 환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광주보훈병원이 있는 광산구 인근에 대형 병원이 없어 국가 유공자가 아닌 지역주민분들도 많이 찾아오고 계시지요.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금연이 중요합니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줄이면서 건강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하려는 노력이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챙기는 습관보다 질환 예방에 더 좋은 방법입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그는 하루에만 무려 250여 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했다. 심근경색증 시술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한 의사로도 꼽힌다고. 그는 새벽 5시 반이면 출근해 환자를 만나왔고, 주말에도 아침 일찍부터 출근 도장을 찍으며 심뇌혈관질환 연구에 몰두했다.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돼지 심장 실험실을 설립하고 심근경색증 환자를 위한 스텐트 시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가 ‘돼지 아빠’라고 불리게 된 이유다. 심혈관계 질환은 세계적으로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질병입니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공간이 좁아져서 발생하는 심근경색과 협심증이 대표적인 질환인데요. 치료를 위해서는 좁아지거나 막힌 혈관에 원통형 금속 재질인 스텐트를 넣어 혈관을 확장하는데, 스텐트는 수입 의료기기 품목이라 고가인데다 삽입한 금속이 혈전과 염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돼지 심장 실험실은 이러한 스텐트의 단점을 극복하고, 국산화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돼지의 심장은 인간의 심장과 가장 비슷한데, 지금까지 3,700여 마리의 돼지를 실험한 결과 스텐트 관련 특허만 총 84개를 등록하고 그중 두 가지를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지요. 세계 최초로 혈전과 염증을 유발하지 않도록 개발한 생체 적합성 스텐트는 미국 특허까지 취득해 앞으로 의료 선진국에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스텐트 공장을 세우고, 개발한 제품으로 동물실험을 하고 사람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기까지 짧게는 10여 년이 걸리는 개발에 막대한 비용과 수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지만, 값진 결실을 거둬 뿌듯한 마음입니다. 2005년부터는 한국인 급성 심근경색증 등록연구 총괄책임자로서 현재까지 8만 3,000여 명의 환자를 등록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예방과 치료 방법 연구에 본격적으로 매진해 왔습니다. 급성심근경색증 분야에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논문인 425편을 발표했죠.. 이러한 놀라운 연구성과에 일본·중국 등 아시아권 국가들이 협력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어요. 현재는 공동연구를 통해 아시아인의 체질에 적합한 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연구하는 의사. 정 전문의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의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심장학 분야에서 1,920편의 논문을 쓰고 96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역 의과대학 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돼지 심장 실험을 통해 의학박사 학위 수여자 23명을 배출했는데, 이 중 16명이 의대 교수가 됐습니다. 크게 보람을 느끼는 일 중 하나지요. 2003년부터 시작한 광주국제심장중재술심포지엄(GICS)도 세계 의료인과 교류하며 연구하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시작한 일입니다. 세계 최초로 관상동맥 혈관 실험을 한 로버트 슈워츠 메이요클리닉 순환기내과 의사는 제 은사님이시기도 한데, 매년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 계시지요. 최근 의료계에서 기초연구를 하려는 젊은 인재가 줄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필수 의료에 대한 낮은 수가,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들의 사법적 부담 등 열악한 의료 환경이 주된 원인인데, 정부의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국립심뇌혈관센터가 완공되면 최소 570명의 연구원이 필요한데, 기초연구 발전과 심뇌혈관질환 치료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국립병원이 국내 의료기관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건 그가 가진 오랜 생각이다. 불필요한 진료 행위를 줄이고 기초연구를 튼튼하게 만드는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묵은 의료계 문제를 개선하는 실마리도 그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국립병원에 대한 지원을 늘려 공공의료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의료계 내에 연구하는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원이 매우 중요하지요. 치료제 하나를 개발하는 데도 막대한 비용이 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진료하는 보훈병원이야말로 ‘최고의 병원’이 되어야 하고요. 각 지역의 국립병원 활성화는 지방의 필수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여 최적의 진료를 이뤄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갈 생각입니다. 황칠나무 천연물에서 추출한 심부전증 치료제, 혈관 석회화를 예방하는 치료제는 이미 특허 등록을 신청했고, 이후에도 심혈관계 약제를 이용한 임상 연구와 심장혈관 스텐트 개발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