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육군주만참의부(이하 참의부)의 가장 대표적인 무장투쟁인 ‘사이토 총격 저격 사건(1924. 5. 19.)’ 100주년을 맞아 채찬, 김창균, 장창헌, 이춘화 선생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이 사건은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압록강 상류지역 국경 시찰 정보를 입수한 참의부가 펼친 총독 사살 작전이다. 당시 참의장 채찬은 제2중대 장창헌에게 총독사살 명령을 내렸다. 장창헌은 이춘화, 김창균 등을 급파하고 압록강이 한눈에 보이는 절벽에 매복, 시찰단의 배를 향해 사격했다. 시찰단이 응전도 못 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총독 사살에는 실패했으나 우리 민족과 독립운동계에는 큰 용기를, 일본에는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 운동 이후 양심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독립을 지지·지원하기 시작했다. 플로이드 W. 톰킨스는 1872년 하버드대 졸업 후 필라델피아 대표 목사로 활동하다가 한국친우회 결성을 주도하고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의 한국 탄압을 규탄하며 한국의 독립을 적극 지지했다. 캐나다 출신 프레드릭 맥켄지는 20대에 영국으로 건너간 후 동아시아 지역 담당 종군기자가 돼 러일전쟁을 취재했다. 처음엔 친일이었지만 일본의 만행을 목도 후 한국독립을 위해 지원했다. 프랑스 낭시 의원이던 루이 마랭은 파리강화회의에 특파된 김규식을 보고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프랑스 한국친우회 결성 후 초대 회장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한국을 도왔다.
5월, 이달의 전쟁영웅 윤길병 소령(당시 대위)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입대해 1951년 1월 소위로 임관했다. 사창리전투(강원도 화천군), 용문산전투(경기도 양평군)에서 공훈을 세운 그는 1953년 1월 강원도 인제군 812고지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북한군이 유리한 위치를 점한 곳이었으나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고지였다. 6월 1일 북한군 제45사단이 812고지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자 윤 소령은 중대원들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다. 병력의 열세로 적에 포위되었으나 부하들을 이끌고 동굴진지로 들어가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 윤 소령은 전사 했으나 국군은 1953년 6월 8일 812고지를 탈환했다.
6월, 이달의 전쟁영웅 1950년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 제2포대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장세풍 중령(당시 대위)은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포천이 함락되자, 의정부 지역에 투입됐다. 당시 우리 포병대대의 주력 화포는 105밀리 M3 곡사포로 장거리 사격보다는 보병을 근접 지원하는 경량 화포였다. 장세풍 중령이 이끄는 제2포대는 의정부지구 전투에서 축석령을 넘어 공격해오는 T-34 전차를 105밀리 곡사포로 직접 조준 발사해 적의 전차 궤도를 명중시켰다. 이후 제2탄을 장전하려는 순간다른 적 전차의 공격으로 포반원 전원이 산화하고 말았다. 당시 서울 관문을 위협하던 적을 지연시킨 것은 개전 초기 포병이 보여준 가장 극적인 전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