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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록과 음악에 나타난참기 힘든 남자의 산통 요로결석
철학자 에피쿠로스, 비질리오 교황,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이들은 모두 ‘남자의 산통’이라 묘사될 만큼 통증이 극심한 요로결석을 앓은 공통점이 있다. 요로결석은 기원전 4800년 기록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질환이다. 그러다 보니 고대부터 다양한 치료법이 시도됐다. 18세기, 마린 마레는 요로결석 수술과정의 고통을 음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여러 기록에서 발견된 ‘요로결석’의 역사를 짚어본다.
역사 속 유명인도 피하지 못한 요로결석
요로결석은 신장, 요관, 방광을 거쳐 요도를 통해 배출되는 ‘소변 길’, 즉 요로(尿路)에 생기는 돌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이미 기원전 4800년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질환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 속 많은 유명인들도 요로결석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는 기록이 많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70년경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요로에 돌이 막혀 2주간 고생하다가 사망했고 537년에 재위한 제59대 교황 비질리오는 결석으로 고통받다가 555년 시칠리아에서 선종했다. 방광결석을 자주 앓았던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1483~1546)는 1537년에 소변을 볼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러 거의 죽을 뻔했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중 흔들리는 마차의 진동 덕에 돌이 스스로 풀리면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러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 표트르 대제(1672~1725)도 말년에 결석을 심하게 앓았다. 지속적인 과음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당시 의사들이 결석을 제거해 보니 무게가 무려 1.8㎏에 달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사망 전 요독증으로 소변을 보지 못해 방광에 구멍을 뚫어 소변을 빼내는 수술도 했으나 결국 요로결석과 요독증이 악화해 사망했다. 사후 부검해 보니 방광이 심각하게 썩어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박물학자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1707~1788)는 사망 후 부검 결과 57개의 돌이 발견됐다는 기록도 있다. 천하를 호령했던 나폴레옹(1769~1821) 1세 역시 중년 이후 방광결석을 앓으면서 1812년 보로디노 전투에 출장하지 못해 참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외에도 이탈리아의 조각가 미켈란젤로, 프랑스의 루이 14세, 철학자 베이컨 등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이 요로결석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전한다.
음악으로 표현된 방광결석 제거 수술의 고통
지금도 요로결석은 비뇨의학과에서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다. 요로결석의 원인은 물을 충분하게 마시지 않아 소변량이 줄고 농축되면서 결석이 쉽게 형성돼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분 섭취는 늘지 않았는데 땀 분비는 증가하는 여름철에 발병이 많은 이유다. 대표 증상은 옆구리나 복부 측면의 심한 통증과 혈뇨다. 통증은 갑자기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간헐적 형태를 띠며 오심, 구토, 구역질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남자의 산통’, ‘칼로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 ‘불에 달군 쇠꼬챙이를 등에 쑤셔 넣는 듯한 작열통’, ‘생지옥 속에 사는 고통’…. 이처럼 무시무시한 표현만으로도 고통의 강도가 전해지는 듯한데 의료계에서는 결석의 통증을 치통, 산통과 함께 3대 통증으로 꼽는다.
이 끔찍한 고통, 특히 마취가 없던 시절 ‘생으로’ 결석을 제거해야 했던 고통을 곡으로 만든 음악가가 있다.

참기 힘든 남자의 산통 요로결석

루이 14세의 궁정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연주자였던 프랑스 음악가 마린 마레(1656~1728)다. 그는 1725년에 자신이 겪은 끔찍한 방광결석 제거과정의 고통을 라는 제목의 음악으로 표현했다. 우리말로는 ‘절제 수술 과정’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무마취 방광결석 제거 수술을 앞둔 환자의 극심한 두려움, 구속장치로 팔과 다리가 고정된 채 회음부가 찢기는 고통, 아픔에 절규하는 환자의 감정,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수술 후의 평화를 14개의 간결한 주석과 함께 음악에 담았다. 의료와 음악을 접목한 마린 마레는 64세이던 1720년에 결석 제거 수술을 받고 72세까지 살았다.

참기 힘든 남자의 산통 요로결석

요로결석 수술의 역사
생살이 잘리는 끔찍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결석 제거 수술은 사망 위험에도 불구하고 단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수술하지 않아도 결석의 고통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 방법은 오랫동안 진화했다. 고대에는 시술자가 손가락을 환자의 직장으로 집어넣어 방광 속 결석을 찾아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결석을 회음부로 이동시키면서 눌러 회음부에 돌출된 피부를 칼로 절개해 방광 속 결석을 끄집어내는 방법이다. 15세기 들어 오스만 트루크의 의사들은 요도를 통해 방광 안으로 기구를 넣은 후 돌을 부수고 방광을 세척하는 기술을 사용했으며 16세기에는 피에르 프랑코(Pierre Franco)가 방광 위쪽의 피부를 절개해 방광으로 들어가는 치골 상석 절개법을 사용하는 등 여러 방법이 시도됐다.

그러다 1727년, 윌리엄 체슬던(William cheselden)이 요도와 항문 사이, 즉 회음부를 절개해 방광으로 접근하는 측방 소포석 쇄석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1분 이내에 수술을 마치면서 당시 결석 제거 수술로 인한 사망률을 대폭 낮췄다. 무마취 수술이다 보니 수술 시간은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이후 외부에서 드릴 같은 기구를 이용해 돌을 부수는 수술법 등 다양한 수술기구들이 개발됐다. 그러나 여전히 마취도 없이 진행되던 수술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19세기 후반 들어 드디어 마취가 도입됐다. 하버드 의대의 비글로우(Henry J Bigelow)는 1878년에 전신 마취 상태에서 방광에 물을 가득 채우고 돌을 분쇄해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수술 사망률은 2.4%로 뚝 떨어졌다. 20세기 들어서는 덜 침습적인 방법들이 개발됐다.
1980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체외충격파치료기가 등장,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도 몸 밖에서 충격파를 이용해 몸 안의 결석을 부술 수 있게 됐다. 참 고마운 기구다. 오랜 진화를 거쳐 오늘날에는 작은 결석의 경우 약물요법만으로도 제거할 수 있게 돼 끔찍한 수술의 고통에서 해방됐으니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재발률 50~60%, 예방수칙 지켜야
모든 고통을 이겨냈음에도 요로결석의 5년 이내 재발률은 50~6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결석 유경험자이든 무경험자이든 예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 통하는’ 소변 길을 만들기 위한 생활 속 예방수칙을 유념하자.

요로결석 예방법
1. 소변검사, 복부 촬영 등 정기적인 검사하기
2. 하루 소변량이 3리터 이상 유지되도록
3. 2~3리터의 수분 섭취하기
4. 고용량 비타민 C는 요로결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과다 섭취하지 않기
5. 동물성 단백질은 다량 섭취 시 소변이 산성화해 결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줄이기
6. 음식은 짜지 않고 싱겁게 먹기
7. 맥주는 단기간에는 요로결석을 완화할 수는 있으나 장기적 섭취는 해로우니 피하기

참기 힘든 남자의 산통 요로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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