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아래 오래된 서울후암동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네가 있다. 시간이 비껴간 골목을 누비며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담아본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서울 골목 서울역 앞 언덕 위에 펼쳐진 후암동은 남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동네다. 마을에 크고 두꺼운 두텁바위가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후암(厚岩)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도심 곳곳에 숨어있는 골목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다. 옛 정취는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으로 무장한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투박하고 오래된 동네가 새로운 감성의 공간으로 매력을 더하게 된 것이다. 꿈을 키우는 청년 사업가와 예술가들도 낡은 풍경에 슬며시 스며들고 있다. 집세가 싸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람 냄새 물씬나는 이 오래된 골목길이 그저 좋아서다. 구불구불 복잡한 후암동 골목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남산과 N서울타워가 늘 길잡이가 되어준다. 일본의 부촌에서 가난한 이들의 고향으로 골목을 걷다 보면 뾰족한 지붕에 처마가 긴 이층식 구조를 한 주택을 쉽게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살았던 적산가옥으로, 서양 건축양식을 따라 만든 주택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후암동은 과거 일본인들의 부촌이었다. 러일전쟁 이후 용산에 일본국 병영이 건설되면서 1930년대 대표적인 일본인 주거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두텁마을'은 '미사카도리' 즉, 삼판통으로 바뀌어 불리며 일제에 의해 이름까지 잃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해방 후 후암동은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하는데, 전쟁에 패한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북한실향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게 되면서 '해방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전쟁에서 고향을 잃은 이들, 타국에서 떠나온 정착민들과 공장을 찾아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았던 해방촌은 이제 달동네의 장점을 살려 남산타워와 서울 시내가 펼쳐진 루프탑 카페와 레스토랑 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고, 근현대사의 아픔이 담긴 오래된 적산가옥 또한 게스트하우스나 가게로 활용되며 새로운 관광명소로 재탄생되고 있다. 오밀조밀 들어선 골목길 따라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이곳 후암동은 어떤 이들에게는 향수를 또 어떤 이들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경성호국신사 참배 길이었던 108계단 후암동을 방문할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해방촌 언덕과 골목을 샅샅이 누빌 수 있는 마을버스가 최적이다. 용산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후암동 종점에서 내리면 하늘로 이어진 듯한 108계단을 볼 수 있다. 평범한 동네 계단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 전몰장병을 추모하고자 경성호국신사를 지으며 참배 길로 만든 계단이다. 경성호국신사와 계단 건립에는 우리 민족의 재산과 노동력이 이용되었고, 추모행사와 전쟁 승리 기원행사에도 수많은 조선인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신사는 해체되어 다세대주택이 들어섰고 계단에는 편하게 언덕을 오를 수 있는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서울 내 주택가에 설치된 첫 번째 경사형 승강기로 1~4층에서 타고 내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젊은이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어르신들은 승강기에 탑승한다. 108계단을 오르는 동안 계단 옆에 다닥다닥 붙은 집과 벽화들이 풍경처럼 스쳐간다.
민족정기를 일깨우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일제강점기 일본은 천황에 대한 숭배를 각인시키기 위해 우리나라에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신사를 세웠는데 그 정점이 바로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이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을 신사 참배의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 민족의 기를 꺾을 목적으로 세운 신궁을 허문 터에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건립됐다. 단지 동맹을 상징하는 12개 유리 기둥을 묶은 형태의 건물에 지하 1층을 시작으로 총 3개 층 규모의 전시관에는 그의 출생부터 순국에 이르기까지의 전 생애가 전시되어 있따. 중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몇몇 일본인도 눈에 띈다. 격동의 시기를 보낸 역사의 흔적이 남은 이곳에서 시간의 문을 통과하듯 당시의 삶을 그려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