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 전쟁영웅 3월 이달의 독립운동 3.1운동은 일본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지 3,107일 만에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의 파고다공원에 모인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서 공표로 시작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했으며 학생, 농민, 노동자, 여성 등 각계각층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며 5월 말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에 전국에서1,744회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불렀고, 사전에 제지돼 성공하지 못한 것도 310회에 달했다. 독립만세운동의 발전적 형태인 횃불독립만세운동도 전국에서 수백 회 전개됐다. 일본의 무차별 진압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체포되고 희생됐으나 결과적으로 3.1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한국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달의 전쟁영웅 1949년 육군 항공사관학교에 입교한 고광수 대위는 1951년 소위로 임관했다. 제101기지전대, 제2정찰비행전대 등에서 연락기, 훈련기, 전투기 조종을 위한 고등훈련을 받은 그는 이후 중위로 진급해 제10전투비행전대 강릉전진기지에 배치됐다. 동부전선 351고지에서 격전을 벌이던 국군 제15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근접항공작전 및 후방차단작전을 전개하던 부대다. 고 대위는 351고지 폭격 등 중동부 전선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출격 때마다 적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해 ‘폭격의 명수’로 불렸다. 그러나 1953년 정전협정 체결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나선 그의 51번째 전투 출격에서 산화해 6·25전쟁 중 전사한 우리 공군의 마지막 조종사가 됐다.
4월 이달의 독립운동 1910년대 중반 국내외 각지에서 ‘공화주의’ 세력들이 크게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전선에는 점차 국민주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했고, ‘한국인의 자치기관’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1919년 3~4월,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에 모여 독립임시사무소를 설치했고 4월,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고 이승만을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선출했다. 또 당시 국내외에 출현해 있던 타 임시정부와 통합을 추진해 1919년 9월 비로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광복 후 제헌헌법을 거쳐 현행 헌법에도 계승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달의 전쟁영웅 이준식 중장은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이후 항일투쟁에 전념하다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후 총사령부 고급참모 및 제1지대장을 역임했다. 광복 후 귀국해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반을 수료한 이 중장은 1949년 육군 대령으로 임관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전쟁영웅인 이 중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 10일 제3사단장에 임명돼 전투를 지휘했다. 특히 포항 진출을 노리던 북한군 제5사단에 맞서 동해안 영덕지구에서 7월 14일부터 8월 9일까지 3주에 걸친 공방전 끝에 결국 사수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해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