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소리를 찾아서 강원도 횡성 봄을 시샘하는 입춘 한파에도 마음은 이미 봄의 문턱을 넘었다. 꽃샘추위 속 새봄의 향기를 품은 바람을 따라 횡성으로 떠난다.
횡성 오일장에 울려 퍼진 뜨거운 함성 횡성 하면 ‘한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횡성은 한우 말고도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고장이다. 횡성읍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횡성 오일장터다. 매달 끝자리 1일과 6일에 열리는 장날에 맞춰 도착한 장터는 신선한 농산물과 손맛 깃든 떡, 모종을 파는 가판들과 상인들의 호객 소리로 북적였다. 닭강정 튀기는 기름 냄새와 갓 쪄낸 찐빵의 김이 공기를 채우는 이곳은 단순한 시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06년 전, 독립을 향한 외침이 울려 퍼졌던 역사적 무대이기 때문이다.
1919년 3월, 전국을 휩쓴 3·1만세운동의 물결이 횡성 오일장에도 닿았다. 당시 장날은 사람들이 모이기 가장 좋은 날이었다. 천도교 신자와 청년들이 주축이 돼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3월 27일, 장터 한복판에서 누군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순식간에 수백 명이 합세했다. 4월 1일에는 1,300여 명이 모여 군청과 헌병소까지 행진하며 일제에 저항했다. 시장의 흙바닥은 그들의 발걸음으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하늘은 만세 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시위는 일제의 잔혹한 진압으로 얼룩졌다. 몽둥이와 총검 앞에 많은 이가 다치고 끌려갔지만, 횡성 주민들의 독립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 중 하나로 기록되며, 오일장을 역사 속 영웅들의 발자취가 깃든 장소로 만들었다.
3·1운동의 기억을 품은 공원 장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횡성읍 읍하리에 자리한 3·1공원은 그날의 함성을 기리는 곳이다. 1972년에 세워진 ‘3·1운동 기념비’가 공원의 중심에 서 있다. ‘강원도 3·1운동의 효시’라는 글귀가 새겨진 비석은 조용한 위엄을 뽐내며 횡성군민의 긍지를 보여준다. 3월 27일 첫 만세운동부터 4월 1일과 2일 3차에 걸쳐 횡성 읍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을 ‘4·1횡성군민만세운동’이라고 부른다. 이는 강원도 내 최초이자 최대의 만세운동으로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선조들이 희생한 기록으로 남았다. 그 중심에 있던 김순이 여사의 동상과 기념비도 공원 언덕길에서 만날 수 있다. ‘황소 아줌마’로 불릴 만큼 강한 힘과 성품을 자랑했던 여사는 장터 한가운데서 군중들을 이끌며 만세를 외쳤고, 체포되어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용기와 강인함은 지역민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졌고, 황소 아줌마라는 별칭은 독립을 위해 싸운 여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1968년 서거할 때까지 이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매년 3월 1일이면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헌화하고 아이들은 선생님 손을 잡고 역사를 배운다. 그날의 만세 소리는 이제 공원에 새겨진 비석과 주민들의 기억 속에 조용히 남아 있지만, 그 메아리는 여전히 횡성의 봄바람을 타고 흐르는 듯하다. 호수와 함께 걷는 봄의 첫걸음 차로 30여 분을 내달려 횡성의 또 다른 보물, 횡성 호수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횡성 호수길은 맑은 물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약 31.5㎞의 둘레길로, 2000년 횡성댐 완공과 함께 탄생한 인공호수인 횡성호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는 횡성 호수길 5구간은 가족의 손을 잡고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가족길’이라는 이름처럼, 9㎞의 완만한 평지는 온화한 햇살 아래서 자연과 사람을 부드럽게 잇는다. 망향의 동산에서 시작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이 길은 횡성댐의 푸른 물빛과 어답산의 웅장한 품을 한눈에 담으며 걷는 이들에게 쉼과 추억을 선사한다.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호수, 바람에 흔들리는 은사시나무의 춤사위는 마치 세월 속에 묻힌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하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수몰 지역의 아픔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장터 가는 가족’은 횡성댐 건설로 물속에 잠긴 마을의 기억을 되살린다. 누나의 손을 잡고 장터로 향하던 남동생, 부모님과 함께 나누던 설렘이 마을이 수몰되면서 멈춰버린 순간을 담은 이 조형물은 고향을 잃은 이들의 그리움을 묵묵히 품고 서 있다. 호수의 고요함 속에서, 수몰된 마을의 그리움과 만세를 부르던 이들의 뜨거운 열망을 떠올리며 그로 인해 얻은 오늘을 되새겨본다.
수채화 같은 풍경을 간직한 풍수원 성당 횡성의 자연과 역사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다면 한국 천주교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풍수원 성당을 들러보길 추천한다. 1907년에 지어진 풍수원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자 한국인 신부가 설계한 최초의 성당으로 1800년대 초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횡성의 깊은 산골로 숨어들며 시작된 곳이다. 마을 주민들과 신부가 벽돌을 굽고 나무를 잘라 일일이 손으로 만든 성당은 소박하면서도 경건하다.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가 성당을 감싸듯 서 있는 모습에 평온함이 더해진다. 오일장이나 호수길을 즐긴 뒤 이곳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을 가지며 조용히 쉬어가면 좋겠다.
사람을 끄는 별미, 안흥 찐빵마을 너도나도 원조라는 찐빵집이 즐비한 곳. 바로 안흥면 찐빵마을이다. 1960년대 초, 안흥은 영동과 영서를 오가는 길목으로 영동선의 휴게소 역할을 했다.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흔했던 시절이라 한 호떡집에서 마을에서 나는 팥을 삶아 넣은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그 맛을 흉내 낸 찐빵집들이 하나둘 생기게 된 것이 지금의 찐빵마을을 이루게 된 내력이다. 2022년에는 안흥찐빵을 주제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가득 담은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도 생겨났다. 김 폴폴 나는 찐빵을 호호 불어먹는 맛은 횡성을 기억하게 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횡성시장의 명물, 한우빵과 육회더덕비빔밥 횡성 한우가 듬뿍 들어간 빵에 입소문이 난 카페가 횡성시장에 있다. 부부가 직접 개발해 2,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판매하는데, 고기와 빵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에 가게는 항상 만원이다. 매일 횡성 축협에서 직접 사 온 신선한 한우의 우둔살만을 사용한 것이 맛의 핵심이라고. 오직 횡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육회더덕비빔밥도 있다.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난 행복식당에서는 육회에 횡성 특산물인 더덕을 곁들여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맛과 아삭한 식감으로 육회비빔밥에 즐거운 변주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