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 전쟁영웅 1월 이달의 독립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진행된 대한민국의 구국운동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벌인 차관 공세로 얻게 된 대한제국의 국채 1,300만 원이 국가의 독립과 토착 상인의 경제적 독립을 위협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1907년 위기의식을 느낀 대구의 상인들이 담배를 끊어 국채를 보상하자며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은 이후 전국으로 확산했다. 국민 상하 구분이 없이 부녀자, 상인, 학생,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결국 경술국치라는 국권 피탈 상황을 맞게 됐다.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기 구국운동이 국민적 대중운동으로 승화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달의 6·25 전쟁영웅 안병섭 이등상사는 6.25 전쟁 발발 후 중공군 공격이 예상되는 두매리 고지 일대의 방어 임무에 투입됐다. 1951년 12월 28일,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감행되고 3일 만에 고지를 넘겨준 국군은 이듬해 1월 3일 고지 탈환을 위한 반격에 나섰다. 안병섭 이등상사는 4명의 특공조를 편성해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던져 파괴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활약 덕에 두매리 주변 고지도 연이어 탈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안병섭 이등상사는 임진강 방어전과 지리산 지구 무장공비 토벌작전 등에 투입돼 전공을 세웠으나 1952년 11월 야간 수색 작전 중 적의 기습으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2월 이달의 독립운동 1927년 2월 15일 창립돼 1931년 5월 16일 해체된 신간회는, 일제 식민지 당시 국내 항일 운동 단체 중 최대 규모의 공개된 조직이었다. 존속하는 동안에 서울 본부를 비롯해 전국에 120~150여 개 지회를 두고 2만~4만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민중계몽 운동, 민족·민중의 생활·생존권 수호 운동, 항일 민족운동을 펼쳤다. 신간회 운동은 4년여의 활동으로 끝났지만,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하나로 합친 최대의 민족협동전선 조직이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념상 지향점이 달랐던 두 운동 세력의 결합은 처음부터 한계도 있었다. 신간회 해체는 ‘협동’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이념과 이론, 지탱할 정치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달의 6·25 전쟁영웅 1951년 1월 미 제8군사령부는 적 지역에 유격전을 전개할 목적으로 유격군사령부 윌리암 에이블기지를 창설했다. 미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는 이들에게 보급과 훈련을 지원했으며, 1951년 7월에 ‘제8240부대’로 명명하고 본격적인 작전에 나섰다. 미군, 국군 장교, 한국인 지원자들로 이루어진 유격대는 북한 후방에서 포로 획득, 보급로 파괴 등 4,000여 회가 넘는 작전을 수행했다. 이 부대는 정전협정체결 이후 국방부 제8250부대로 재편 후 육군에 편입됐으며, 1958년 4월에 창설된 육군 제1전투단(현, 제1공수특전여단)의 모체가 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수많은 작전에서 공적을 세운 65명의 대원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