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가득 서천 여행 금빛 갈대 위로 후드득 철새가 날아오른다. 서천의 낭만과 운치는 겨울에 더욱 풍성하다. 예스럽고 고즈넉한 마을의 멋과 향이 몸과 마음에 깊은 휴식을 선사한다. 서천은 서해안을 따라 펼쳐진 충남에서 제일 아래 지방에 자리한 고장이다. 서쪽은 바다와 마주하고 있고 남쪽은 금강과 마주하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서천이라는 이름보다 서천군의 작은 면에 불과한 한산이 더 낯익다. 한산 세모시와 한산 소곡주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이다. 전통을 명품으로 만드는 사람들 서천군 한산면 일대는 먼 옛날 백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다. 다사다난했던 백제의 역사와 함께 그때부터 빚었다고 알려진 전통주 ‘한산소곡주’가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백제의 궁중 술이라 알려진 소곡주는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산소곡주 양조장이 있는 지현리로 들어서면 오래된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집들은 읍성과 맞닿아 있어 더욱 예스러운 정취를 더한다. 한산읍성은 조선 시대 왜구가 강을 끼고 자주 침범해오자 고을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쌓았던 성이다. 때로는 격전의 현장이었을 과거의 흔적은 사라지고 역사의 기록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한산읍성은 평온함만이 맴도는 마을을 더욱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역사를 몰라도 거닐며 누리기에 더할 나위 없다. 산 좋고 물 좋은 마을에 술이 맛있지 않을 리 없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란 시구가 떠오르는 이 지역은 실제 지역 단위당 가장 많은 양조장을 가진 술 마을이다.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려도 됫병에 소곡주 구하기가 쉽고, 마을에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간판과 글씨도 ‘소곡주’일 정도다. 첫 잔을 입안에 탁 털어 넣으면 향기로운 맛에 반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을 정도라 하여 사람들은 소곡주를 ‘앉은뱅이 술’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과거 길에 오른 선비가 한산 지방의 어느 주막에 들러서 목을 축일 겸 술 한 잔을 마셨는데 그 술이 너무나 달고 맛나기에 한두 잔 더 마시고 일어나니 다리를 펴면 넘어지고, 또 일어서려 하면 넘어져서 결국 과거 시험도 못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장의 손짓을 따라 소곡주 주조장 겸 시음판매장에 들어서자 독에서 방금 떠낸 소곡주 한 잔을 권한다. 코끝을 맴도는 향긋한 누룩 향을 맡으며 한 모금 마시니 술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달콤하고 감칠맛이 돈다.
술에 취하고 세모시에 반하고 이제 앉은뱅이 술을 뒤로하고 서천을 대표하는 또 다른 특산물인 ‘한산모시’를 만나볼 차례다. 길 건너에 자리한 ‘한산모시마을’에는 사라져가는 한국전통문화의 명맥을 잇고자 하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백옥같이 희고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서 여름철 옷감으로는 최고로 치는 모시는 온몸을 이용해 만들어낸다. 손은 물론 발과 무릎, 심지어 이까지 사용해 꼬박 일주일 동안 중노동을 하면 겨우 모시 한 필 손에 쥘 정도로 힘겹다. 최근엔 화려하고 값싼 인공섬유가 쏟아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1,500년 한산모시의 전통은 끊어지지 않았다. 한산모시는 정교하게 제작해야 하는 세모시로 유명한데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한산모시짜기’라는 이름으로도 등재되는 등 보존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모시마을 가운데 자리한 홍보관에는 모시를 짜는 도구와 문헌, 한산 세모시로 짠 옷 등이 전시되어 있고 장인이 물레질하는 장면도 직접 볼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또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이다.
청년의 절개를 찾아서, 이상재 선생 생가 전통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지나 이제 170여 년 전 역사의 시간 속으로 가본다. 외세의 간섭과 정치적 혼란이 소용돌이치던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과 YMCA 운동을 통해 민족을 계몽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 앞장선 월남 이상재 선생의 생가가 한산면 종지리에 있다. 전통적인 농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선생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깊이 새기며 평생을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키워왔던 곳이기에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청년이 나라의 보배요, 천하의 보배다.”라고 하시며 청년을 사랑하고 또 ‘영원한 청년’이라 불렸던 선생의 삶의 궤적은 생가지 오른편에 조성된 전시관에서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YMCA에 들어가 젊은이들에게 야구 등 현대 스포츠와 상공업과 같은 현대 교육을 가르치고, 폭력으로 하는 운동은 우리 민족이 떳떳할 수 없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할 수 없다며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남겨 주었다는 기록은 선각자이자 참 스승이었던 선생을 더욱 그립게 한다. 권위를 앞세우지 않고 풍자와 해학을 즐겼으며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격의 없이 토론하며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아간 이상재 선생을 기억하며 선생의 정신이 살아 넘치는 나라를 희망해 본다.
전통의 숨결로 빚은 우리 술을 찾아서, 한산소곡주갤러리 술 빚기에 필요한 기본 재료는 쌀, 물, 누룩이다. ‘한산소곡주’의 이름을 내걸려면 오직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술맛은 양조장마다 모두 다르다. 쌀에 누룩을 더해서 밑술을 만들고 다시 고두밥으로 덧술을 하는 이양주 방식은 비슷하지만, 양조장마다 첨가하는 재료가 다르고 몇 대에 걸쳐 내려온 비법을 더하니 김치나 장맛처럼 술맛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산소곡주갤러리는 소곡주의 홍보와 판매를 위해서 조성한 공간인데 방문객들이 부담 없이 소곡주를 시음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금강을 따라 펼쳐진 ‘신성리 갈대밭’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람 키보다 더 큰 갈대밭 속에서 남한군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이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에게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이 바로 신성리 갈대밭이다. 한산을 지나 금강변 쪽으로 내달리면 금강제방이 나오는데 그 둑에 올라서면 폭 200m의 갈대밭이 1㎞ 이상 끝없이 펼쳐진다. 구불구불 오솔길이 다듬어져 있고 군데군데 쉼터도 조성되어 있어 가슴 깊이 숨겨둔 감성을 끄집어내기 좋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갈대밭으로 들어가 멋진 인생 사진 하나 건지는 추억을 만들어보자.
지구의 모든 생태계가 이곳에, 국립생태원 서천을 생태 도시로 거듭나게 만든 명소인 국립생태원은 지구의 모든 생태계와 조우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국립생태원의 메인 전시관인 에코리움은 2만 1,000㎡가 넘는 공간에 전 세계에 분포한 200여 종의 동물과 1,400여 종의 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한반도를 비롯해 열대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대에 사는 다양한 동식물을 만날 수 있어 생태원을 두루 관람하고 나면 지구촌을 한 바퀴 돌고 온 기분이 든다. 더구나 책이나 TV에서 보던 바오밥나무, 프레리독, 목도리도마뱀 등을 직접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학습 여행 코스를 짜기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