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영화 <소풍>,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비친 노년의 삶을 통해 인구 20%에 해당하는 노년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늙으면 아프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 인생에서 노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시기는 34세, 60세, 78세다. 34세에 체력과 유연성이 떨어지는 첫 번째 노화 징후가 나타나고, 60세가 되면 주름이 늘고 근골격계와 뇌세포 기능이 눈에 띄게 저하돼 기억력이 감소하며 몸 이곳저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78세에 이르면 에너지가 감소하고 신체적 활동에 대한 회복력이 매우 느려진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신체 구성비가 바뀌어 피하지방은 줄고 복부 내장지방이 증가하면서 여러 질환이 생긴다. 전문가들은 개인에 따라 노화 속도는 다를 수 있어도 ‘절대 아프지 않고 나이 드는 것은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마냥 유쾌하게 웃으며 볼 수만은 없다. 노년의 품위와 존엄을 묻는 사회적 질문에도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늙고, 늙으면 아프고, 결국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들의 방식으로 노년의 사랑을 실천하는 영화 <소풍>과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그런 의미에서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소풍>(2024)
# 노년의 우정 <소풍>(2024) <소풍>(2024)은 80대 중반의 노인들이 열연한 그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70대가 된 중학생 시절 친구 은심(나문희), 금순(김영옥), 태호(박근형)가 고향에서 만나 자식, 건강, 재산 등 인생사 공통의 문제를 공감하고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노년의 삶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고향을 찾지 않고 지내던 은심이 금순에게 고향에 가자고 한다. 그곳에서 은심은 금순과 함께 중학생 때 친구 태호를 만나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함께 나들이도 가고 금순의 집 마당 평상에 앉아 막걸리 장인이 된 태호가 직접 빚은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꽃도 피운다. 마을의 어른답게 동네를 개발하려는 업자들을 상대로 마을 지키기에도 앞장선다. 중학생 시절엔 은심을 홀로 좋아하며 부끄러워했던 태호지만 노년의 친구는 중학생 때보다 더 편하고 스스럼없다. 영화는 화면 중간중간, 중학생이던 친구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들의 ‘현재’와 중학생이던 ‘그때’를 함께 보여준다. 청춘의 모습과 달라진 건 70대의 나이 든 외모, 그리고 늙으면 자연스럽게 고장이 나는 신체뿐인 듯하다. 은심은 파킨슨병으로 언젠가부터 손 떨림 증상을 겪고 있고, 금순은 골다공증으로 인해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살뜰하게 ‘여사친’들을 살펴주는 태호는 자식에게도 병을 숨기고 홀로 뇌종양과 싸운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작별의 시간도 주지 않고 태호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무심하고 급작스럽게 떠난 태호를 담담히 보낸 은심과 금순은 자신들의 병도 깊어감을 느끼며 소풍을 결심한다. 파킨슨병으로 굼뜬 은심의 움직임 탓에 허리 통증으로 움직이지 못하던 금순이 누운 채로 소변을 지리고 만날, 둘은 주변을 정리하고 옷을 곱게 차려입고는 소풍을 떠난다. 산꼭대기에서 찬란한 햇빛과 마주한 두 사람,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할 끼다!” 금순의 이야기가 먹먹하게 가슴을 울린다. 그들의 소풍은 과연 어떤 소풍일까…. #노년의 사랑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소풍>이 우정을 통해 노년의 삶을 이야기한다면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사랑을 통해 노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노배우들의 빛나는 열연으로 만화의 감동을 뛰어넘은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는 욕쟁이 할아버지 만석(이순재)과 비슷한 시각에 폐지를 주우며 같은 골목을 지나는 소녀 같은 할머니 송 씨(윤소정), 치매를 앓는 순이(김수미)와 그런 아내를 돌보는 주차장 관리인 군봉(송재호)이 주인공이다. 새벽 골목길에서 만석과 송 씨의 애틋한 인연이 시작된다. 처음 만난 송 씨에게 다짜고짜 “크게 말해!”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만석, 그에게는 난청이 있다. 하지만 보청기를 잊지 않고 챙겨 착용한 덕에 점차 다정한 말투의 ‘썸남’이 된다. 노인성 난청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중 30%에서 발견될 정도로 흔한데 75세 이상 노인은 거의 절반이 난청을 앓는다고 한다. 노인성 난청을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는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는 것을 넘어 인지기능 저하로 치매 발생률을 높이고 우울증, 심장질환, 낙상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삶의 질도 훅 떨어진다. 그래서 ‘늙으면 다 그렇지!’라고 치부하지 말고 보청기 착용 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만석의 ‘잊지 않고 보청기 착용하기’ 노력 덕에 이들의 사랑은 몽글몽글 피어난다. 글자도 모르고, 이름도 없고, 주민등록증도 없이 살아온 송 씨에게 만석은 ‘송이뿐’이란 이름도 지어주고,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도 해주고, 독거노인 생활지원금도 받게 해준다. 생애 처음 생일파티도 열어준다. 이들의 사랑이 시작되는 사랑이라면 군봉과 순이의 사랑은 노부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지극정성 치매 걸린 아내를 보살피던 군봉은 순이에게 말기 암이 있다는 걸 알고 중대한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긴다. “잘 자래이, 난 겁쟁이 아이가~ 당신 없인 못 살 것 같대이~ 우리 또 만나재이~” 스스로 떠난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는 군봉의 마지막 편지에는 노년의 존엄을 지키고픈 마음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 이들의 장례식이 끝난 후, 송 씨가 만석에게 말한다. “당신을 먼저 보내고 살 수 없을 것 같다. 처음의 행복을 안고 간직하며 고향에서 살고 싶다.”라고. 고향까지 ‘송이뿐’을 배웅해준 만석이 말한다. “한 번 안아봐도 될까? 다시 볼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또 볼 수 있을까?”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웰에이징, 웰다잉을 위한 고민 두 영화에는 다소 건강해 보이는 노인들이 등장함에도 파킨슨병, 골다공증, 뇌종양, 난청, 치매와 같은 질병이 그들과 함께한다. 노년의 삶에서 병은 숙명의 동반자다. 그래서 우리는 짧게 앓다가 고통받지 않고 잠자듯 편한 작별을 소망하는지도 모른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웰에이징(Well-aging),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어느 세대도 소홀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 노년, 두 영화를 통해 더 많이 느끼고 준비한다면 내 노년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부모님께, 주변 어르신께 안부를 여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