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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 & 이달의 6·25 전쟁 영웅
이달의 독립운동가 & 이달의 6·25 전쟁 영웅
9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안춘생-조순옥, 박영준-신순호 선생은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나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청년 독립운동가이자, 광복군 부부다. 안춘생 선생은 구국정신을 상징하는 안중근 집안, 조순옥 선생은 6형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조정규 집안, 신순호 선생은 임시정부 수립의 산파 신규식 집안, 박영준 선생은 대중 외교활동에 앞장선 박찬익 집안의 사람이다. 1940년 9월 17일, 연합군과 연대해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대, 광복군이 창설됐는데 이들 두 부부는 광복군에서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안춘생, 박영준 선생은 1949년 환국 후 육군 창설에도 함께 참여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 이달의 6·25 전쟁 영웅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905년 한국 역사상 최초로 한인 1,018명이 멕시코에 도착 했다. 이들을 기다리던 일은 4년간 이어진 에네껜 농장에서의 갖은 고역. 1909년 5월이 돼서야 농장에서 풀려난 멕시코 한인들은 ‘국민회 메리다(Mérida) 지방회’를 조직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가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2살 때
멕시코로 건너간 임천택 선생은 18살에 쿠바로 이주해 국민회 지방회, 교육·종교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서병학·박창운 선생은 에네켄 농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린 후 1921년 쿠바로 건너갔다. 이후 서병학 선생은 멕시코와 쿠바의 한인 사회를 이끌었으며 박창운 선생 역시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 이달의 6·25 전쟁 영웅
9월, 이달의 전쟁영웅
최병익 중위(당시 소위)는 1952년 5월, 갑종간부후보생을 거쳐 육군소위로 임관한 뒤 소양강 상류의 최전선을 방어하는 제8사단 제10연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부임했다. 1952년 전반기 이후 전선은 한동안 교착 상태였으나 9월 중순 이후 북한군이 대규모 공세를 준비한다는 걸 알게 된 우리 군은 방어선 강화에 나섰다. 9월 21일, 북한군의 대대적인 포격에 제 3소대는 동부전선의 요충지, 강원 인제군 705고지에서 적 2개 중대를 상대로 백병전을 펼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악전고투 속에서 사력을 다하던 최병익 중위가 적의 수류탄에 전사했다. 소대장의 죽음을 목격한 소대원들은 고지를 사수하겠다는
굳은 결의로 싸워 결국 적을 705고지에서 몰아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 이달의 6·25 전쟁 영웅
10월, 이달의 전쟁영웅
남제평 경감은 1948년 경찰 경위로 임용됐다. 곡성경찰서 정보참모로 재직 중 6.25전쟁이 발발하고 1개월 만에 전남 곡성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태안사로 작전지휘소를 옮기고 경찰서 대원들과 북한군의 남하 저지 및 관할지역 사수에 나섰다. 북한군이 경남 하동에서 전남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곡성군을 통과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한 남제평 경감은 1950년 7월 29일, 주변에 매복하다 적 대열을 기습, 치열한 전투 끝에 적군 사살 52명, 생포 3명, 트럭 4대를 포함한 장비 70여 점을 노획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보복을 위해 8월 6일 태안사를 포위 공격했고, 남제평 경감과 47명의 경찰관은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살신보국(殺身報國)을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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