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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비행의 안전한 착륙을 돕는 사람들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
더 이상 적극적인 항암치료가 어렵다고 판정받은 말기 암 환자들은 대부분 충격으로 갈팡질팡하게 된다. 가족들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해진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 역시 의료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임에는 변함이 없다. 환자의 남은 삶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통증을 조절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안녕히 작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호스피스완화의료다. 광주보훈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병동을 찾아 인생이란 긴 여행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이를 돕는 의료진을 만났다.
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왼쪽부터 조영란 간호과장, 강신애 호스피스환자 보호자, 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
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

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오지만 다들 죽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다. 삶의 마지막에 대한 고민과 준비는 내가 살아온 날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에도,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 앞에서 공포부터 느끼기 때문이다.
광주보훈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병동(이하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장OO 어르신(남. 77세)은 지난해 폐암 말기진단을 받았다. 계속되는 컨디션 악화에 항암치료를 중단했고 주치의는 호스피스를 권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호스피스는 죽기 전에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어르신은 입원을 완강히 거부했다. 아내 강신애 보호자 역시 “남편을 포기하는 것 같은 생각에 많이 망설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선입견 떨친 호스피스완화의료
“낯설고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망설였지만 직접 겪어본 호스피스는 다르더군요. 환자의 몸 상태만 챙기는 게 아니라 환자와 환자 가족의 마음과 기분까지 살뜰히 살펴주셨습니다. 요양보호사분들이 안전하게 환자의 머리를 감겨 주기도 하고 목욕도 알아서 척척 해결해줬어요.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기 전에는 해보지 못한 경험도 여러 번 할 수 있었습니다.”
입원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강신애 보호자는 ‘죽음을 앞두고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떨치고 ‘호스피스 병동에 올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집에서는 눈 감고 지낼 정도로 모든 걸 귀찮아하던 남편이 다양한 서비스와 통증을 완화해주는 의료돌봄까지 받으면서 한결 편안하고 온화해진 걸 느끼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가 마지막까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대신하여 신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의학적 치료에 더해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부분을 돌본다. 발 마사지 같은 이완요법을 비롯해 환자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하여 같이 부르거나 감상하면서 즐거움을 주는 음악요법, 환자의 신앙에 따라 성직자의 영적 돌봄이 이뤄지는 영적 지지 서비스 등 호스피스 완화의료팀은 환자의 삶에 의미 있고 행복한 기억을 남길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환자 임종 후 가족들이 보낸 편지에는 "정성스러운 간호로 고인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환자와 가족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곳
“특히 병동에서 진행하는 원예요법 가운데 ‘소확행’이라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한 번씩 꽃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나를 위한 꽃 선물에 새삼 존중받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남편도 꽃을 받고 너무나 좋아했는데, 그런 감정표현은 처음이라 정말 새로웠죠. 가족이 모든 시간과 마음을 환자와 함께하는데 쏟을 수 있어서 호스피스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했으면 좋았겠다는 그런 아쉬움이 남아요."
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

광주보훈병원 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호스피스 병동은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닌, 남은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곳” 임을 강조하며 “호스피스라는 공간에서 치유를 얻어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더 많은 분이 이곳을 경험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임종이 임박해 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일찍 호스피스를 만난다면 누리고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다는 것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 암 환자로서 본인이 이용을 희망하면 받을 수 있다. 적극적인 항암치료가 환자의 경과에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 통증 완화 및 증상관리가 필요한 환자, 주치의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추천하는 환자가 서비스 대상자다.
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

‘정성껏 모신다’는 호스피스의 참뜻대로
광주보훈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병동은 2015년 보건복지부로부터 호스피스전문기관으로 인정받아 현재 29병상과 임종실 2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의사 4명, 간호사 17명, 사회복지사 2명, 종교인 3명, 여기에 광주지역에서 유일하게 35명의 호스피스 보조 활동인력이 함께 한다. 호스피스환자의 기본간호를 돕는 필수교육을 이수한 요양보호사(완화보조활동인력)가 상주하며 오랜 병실 생활로 지친 환자와 보호자를 전문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영란 간호과장은 “비용부담이 엄청난 개인 간병에 비해 완화도우미제도는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되어 큰 부담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전문인력이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전문적인 케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환자가 임종한 후 찾아와 감사를 표현하는 보호자가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호스피스를 통해 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이 꼭 고통이나 슬픔만이 아니라는 걸 경험하신 분들이었죠.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가 임종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환자와 보호자에게 과정마다 충분히 설명해주고 소통과 격려를 통한 정서적 지지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환자는 물론, 환자를 돌보느라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보호자의 심리적 어려움과 환자의 죽음 이후 세상에 남게 되는 환자의 가족까지 함께 돌봐야 진정한 호스피스라 할 수 있는 것이죠."
‘호스피스’란 말은 손님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Hospes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어 속에 ‘정성을 다해 잘 모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삶과 죽음은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여서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것만큼 나의 마지막 순간을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다. 광주보훈병원 호스피스 병동 의료진은 환자와 가족들이 생의 끝자락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두려움을 치유해주는 희망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약속한다.
“생의 말기에 있는 환자들이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남은 삶 동안 의미 있게 살다가 평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호스피스 의료진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기에 주어진 작별의 시간이 너무도 감사하고 소중하다.
호스피스환자 보호자·김수인 가정의학과 전문의·조영란 간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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