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흔적을 찾아서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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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지는 넉넉한 품속으로전북 부안
전북 부안
길지도 않은 해가 겨울 해가 벌써 기운다.
오려면 멀었다고 생각한 12월도 저문다.
마음이 초조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는지,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지.
마음으로 다스리러 부안으로 향한다.


전라북도에서 서해를 끼고 있는 작은 도시 부안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에서 주인공은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다’고 시를 썼지만 웬걸, 부안에 와서 보니 이곳은 태곳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과 싱싱한 먹거리로 가득하다. 변산반도가 품고 있는 바다와 산, 평야가 아낌없이 모든 걸 내어준 덕분이다.

자연이 빚어낸 보물을 찾아서
변산 제일의 경관으로 채석강을 꼽기에 주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태백이 달을 보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만큼이나 아름다워 이름을 따왔다고 하나, 사실은 해면에 깔린 암반의 채색이 영롱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유래보다 중요한 건 이곳이 강이 아닌 바다라는 점. 채석강은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 일대의 퇴적암층과 바다를 총칭한다.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수백 만년 간 이어온 파도에 씻기고 깎여 ‘해식단애’라는 아름다운 절벽을 이루었고, 절벽은 다시 씻겨 동굴이 되었다. 바닷가를 따라 1.5Km에 걸쳐 펼쳐진 채석강 암반을 두고 어떤 이는 수만 권의 책이 쌓인 것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시루떡을 연상하거나 코끼리 발바닥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700만 년 지구의 기록이 남은 해안 절벽이 내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절벽을 가까이서 감상하려면 물때를 맞추는 것이 필수다. 오직 허락된 시간에만 더 멋진 풍경을 내어놓는 곳. 거대한 절벽을 중심으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일상의 시름과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태양이 붉은 하늘을 펼쳐놓고 바위 해변에 머무는 저녁에는 동굴 속에서 바라보는 노을을 배경으로 인생샷도 건질 수 있다.

전북 부안채석강에서 보는 해넘이
싸목싸목 걷는 추천 명소
여행자들이 ‘부안’하면 떠올리는 곳은 바다 주변인 외변산이다. 그러나 부안 사람들은 안쪽 산악지대인 내변산을 진짜배기로 친다. 북쪽에 솟은 두 개의 울금바위와 우금산성,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월명암과 낙조대도 명소다. 특히 깊숙한 산중에 자리 잡은 직소폭포는 20여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압권. 폭포 아래 푸른 옥녀담이 출렁댄다. 완만한 경사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에 있어 더욱 반갑다.

전북 부안직소폭포와 옥녀담
전북 부안내변산 입구
전북 부안관음봉을 배경으로 한 천년고찰, 내소사
내소사 절 입구로 이어지는 600m의 전나무 숲길도 걸어보면 좋을 길이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삼림욕의 청량함을 안겨주고 오래된 사찰 대웅보전은 천년고찰의 기품과 고즈넉함을 간직하고 있다.
부안은 다채로운 풍광 덕에 충무로가 사랑하는 촬영 명소로도 알려졌다. ‘왕의 남자’,‘선덕여왕’, ‘사도’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촬영 장소가 되었고 넷플릭스 ‘킹덤 2'에서는 부안의 아름다운 풍경이 화보집처럼 담겨 재밌다는 반응 외에도 ‘저긴 어디?’라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아 서둘러 움직이고 싶을 때 ‘싸목싸목’이라는 단어를 되뇌어 보면 좋겠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라는 뜻을 지닌 전라도 방언이다. 스쳐 지나가기엔 아까운 순간, 마음에 담았다가 한 번씩 꺼내고 싶은 풍경이 부안에는 많이 있다.

전북 부안김낙선 의사 추모공원 기적비
독립 유공자 50여 명의 역사가 담기다
부안을 지나던 암행어사 박문수도 물고기, 소금, 땔나무가 많아 부모 봉양하기에 알맞은 곳이라 일컬을 만큼 풍요로웠던 곳. 그러나 이로 인해 부안은 외적의 침입 관문이자 탐관오리의 수탈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맞선 인물 가운데 김낙선 의사가 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빼앗기자 그는 의병부대에 들어가 30여 명의 동지를 규합했고 밤과 낮,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왜군과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었다. 그 후유증으로 44세의 나이에 순국한 그의 정신을 기리는
김낙선 의사 추모공원 기적비(紀跡碑)가 상서면 가오리에 있다. 부안읍 신운리는 백정기 의사가 나고 자란 곳으로, 그는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전북 부안석정문학관
일제 통치의 혹독한 겨울에 ‘촛불’로서 광복의 새벽을 그린 시인도 있다. 현대 시문학의 거장인 신석정 시인은 일제강점기 동안 끝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고, 일어로의 원고 청탁을 거절했으며, 식민시대의 절망을 토로하고 독재와 군사 통치에 맞선 현실참여 시인으로서 일제강점기 조국의 상황을 알렸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와 같은 주옥같은 시인의 작품과 일대기를 담은 영상을 부안읍 ‘석정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다.
부안에는 이밖에도 독립 유공자 약 50여 명의 기록이 있다. 온몸으로 역사의 반전을 이뤄냈지만, 알리고 추념하는 시설은 미미하다. 이분들을 기억하며 발자취를 찾아보는 것 또한 부안을 특별하게 만드는 뜻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전북 부안_Travel Tip_
소금꽃이 만들어낸 존재감, 곰소항
전북 부안
곰소만에는 드넓은 소금밭이 있다. 이곳 천일염은 쓴맛이 없고 끝에 단맛이 도는 게 특징이다. 질 좋은 소금이 있기에 젓갈 단지와 건어물시장이 존재한다. 부안 사람들이 조림으로 즐겨 먹는 풀치를 비롯한 건어물과 각종 젓갈, 간수 뺀 소금도 좋은 가격으로 자루째 사 갈 수 있다.
찐빵과 커피의 조화로운 맛도 경험해보자. 곰소염전 건너편 ‘슬지 제빵소’는 명장이 만든 찐빵과 소금 커피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감성적인 건물 외관이나 빈티지하게 꾸민 내부도 좋지만, 2층 테라스에서 감상하는 해넘이가 무엇보다 일품이다.

격포항, 바다 맛이 집결한 수산물 천국
전북 부안
부안 여행에서 싱싱한 해산물이 빠질 수 있으랴. 조선 시대 때 임금님께 바치던 ‘백합죽’, 씨알 굵은 부안 바지락으로 끓인 ‘바지락 칼국수’, 서해에서 잡은 꽃게로 담근 ‘꽃게장’과 갑오징어, 주꾸미, 숭어회 등이 유명하다. 한 끼 정도는 채석강 바로 옆 격포항에서 해결하면 좋겠다. 격포항에는 아침마다 경매가 열리는 위판장과 수산시장, 회센터가 있다. 격포항 수산시장에서 제철 해산물을 사서 2층 회센터에서 상 차림비를 내고 먹는 것이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자연과 예술을 한자리에, 휘목미술관
전북 부안
국내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개인 미술관으로, 전북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기 좋은 조각공원, 커피 향 가득한 카페, 진공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올드 팝송 등 품격있는 힐링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들의 초대전과 테마 기획전이 매년 3~4회 열린다. 미술관 앞쪽으로는 멀리 갯벌 위로 펼쳐지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고, 뒤쪽으론 변산과 내소사가 있어 함께 구경해보기 좋다. 온전히 머물고 싶다면 미술관이 운영하는 펜션에서 하룻밤 묵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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