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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12월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위 인물은 자신의 목숨으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강렬히 규탄하고 반대 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들이다. 대한제국 전직 고관 홍만식 선생은 1884년 갑신정변 이후 20여 년간 세상을 등지고 살던 중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전해 듣자 이를 통탄하며 음독 순국하여 을사늑약 반대 의지를 알렸다. 대한제국군 진위대 소속 군인 김봉학 선생은 1905년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오자 그를 처단하고자 하였으나 처단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자 1905년 자결 순국하였다. 대한제국 관료였던 이상철 선생은 을사늑약 체결 이전부터 일제의 강압적인 국권 침탈 시도를 규탄하였으며, 이건석 선생은 1905년 유생들과 함께 13도유약소를 결성하여 을사늑약 폐기와 매국노 처단 등을 요청하는 상소 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 사령부에 투옥되었다. 일제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을사늑약 반대 투쟁을 이어나가다 1906년 옥중 순국하였다.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위 인물은 1911년 러시아 지역에서 권업회를 결성하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펼치신 분들이다. 이종호 선생은 함경북도 명천 출신으로 고종의 측근인 이용익의 손자이다. 그는 조부의 ‘광건학교(廣建學校, 널리 학교를 세워 인재를 육성함)’의 유지를 이어받아 전국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거나 학교 경영을 지원하면서 국권 회복을 위한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학만 선생은 함남 단천 출신으로 최재형, 최봉준과 함께 ‘강동의 영웅 3걸’로 불렸고, 초기 연해주 한인사회의 주요 지도자로 한인사회 안정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함경북도 경흥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최봉준 선생은 러시아 군대에 군용품을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하여 자본가로 성장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해주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았다. 권업회 창립총회에서 특별임원으로 선출되었고 권업신문 간행을 지원하였다.

이달의 6·25 전쟁영웅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미 해병대 1사단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으며, 특히 장진호 전투에서 혹한의 추위를 극복하고 중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성공적으로 흥남까지 이동하는 철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수많은 피란민과 각종 전투 장비의 대대적인 철수에서 모든 장비를 버리고 병력만 수송기로 철수하라는 상부의 제안에 그는 “해병대 역사상 그런 치욕은 없었다”라며 거절했다. 미국 정부는 장진호 전투에서의 그의 공로를 인정해 십자수 훈장을 수여했다.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경상북도 경주 출생으로 육군 사관학교 제6기로 입교하여 1948년 7월 28일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6·25 전쟁 초기 제6사단 2연대에 배속된 그는 홍천지구 전투에 이어 충주 지구 전투 중 달천강 도하작전에서 효과적인 근접 지원사격으로 큰 전공을 세웠다. 이후 문경지역을 방어하는 ‘이화령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전략적 요충지를 사수하는 중요한 임무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화력으로 아군 주력의 철수를 엄호하던 중 쏟아지는 적 포탄의 파편을 맞고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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