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흔적을 찾아서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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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만세운동의 함성을 찾아서공주
공주공주 유관순거리
공주에 부드러운 봄바람이 분다. 1500년 전 백제의 모습이 여행자를 그윽한 시간 속으로 안내한다. 귀 기울여야 할 옛이야기, 세월이 감싸 안은 아픈 역사가 걸음마다 따라온다.

공주에서 만난 유관순 열사의 흔적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공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어울린다. 실제로 시인의 작업실이자 사랑방인 공주풀꽃문학관이 있거니와, 골목골목 숨은 이야기와 역사의 흔적을 가득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주 원도심 골목길은 근대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 많다. 그 시작점이 되는 국거리 문화거리만 해도 어머니 봉양을 위해 국을 얻어 오던 효자가 언덕을 넘다가 국을 쏟았던 곳이라는 갸륵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공주국거리 문화거리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으로 유명한 언덕을 따라가면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인 3·1 중앙공원에 닿는다. 유관순 열사상이 뜨거웠던 그의 생애의 기록과 함께 우뚝 세워진 곳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시선이 닿는 곳에는 영명학교가 있다. 영명학교의 전신인 명선학당을 설립한 샤프 선교사의 부인 사애리시는 천안에서 만난 유관순을 수양딸로 삼았다. 그리고 공주로 데려와 이곳에서 2년간 공부하도록 후원하고 1916년에는 이화학당으로 서울 유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일제강점기 공주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교정을 천천히 돌아본다. 올해 서거 101주기를 맞은 유관순 열사의 모교라니, 감회가 새롭다. 유관순 열사 외에도 당시 영명학교 학생들은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영명학교는 독립운동 본거지라는 이유로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다가 1951년 다시 교문을 열었다. 아픈 과거를 쓰다듬으며 학교 뒤편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그날의 함성을 재현한 공주만세벽화를 볼 수 있다.
공주유관순 열사상
공주읍에서 펼쳐진 4·1 만세운동
공주의 독립운동은 고종 황제의 국장이 거행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자 공주 오일장이 서는 4월 1일을 기점으로 활발히 진행되었다.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했는데 그중에는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도 포함되어 있다. 각각 병천 아우내와 공주 오일장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두 남매는 공주교도소에서 만나기도 했다.
‘유관순길’이라 불리는 긴 벽화가 새겨진 골목에는 4월 1일 공주읍만세운동과 더불어 민족의 열망을 표현한 사건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근대교육을 통해 형성된 민족의식과 애국정신이 밑바탕이 되어 공주읍만세운동의 역사가 이뤄졌음을 설명한다. 주변 건물 하나하나에도 사연이 스며있다. 일제 강점기에 종탑을 빼앗겼고, 한국 전쟁 때는 북한군의 무기고로 사용됐던 공주제일교회가 탈바꿈한 공주기독교박물관은 이 땅의 인재를 길러냈던 선교사들의 활약, 시인 나태주와 고 박목월 시인의 인연 등 자세히 보아야 알게 되는 아름답고 숭고한 일화를 소개한다. 골목의 끝에 섰다면 이제 이 도시가 들려줄 더 오래된 이야기를 만나러 가보자. 찬란했던 백제의 과거가 펼쳐진 곳이다.

공주송산리고분군
백제의 흔적이 첩첩이 내려앉은 곳
공주 하면 먼저 백제가 떠오른다. 울창한 솔밭 언덕에 조성된 송산리고분군을 1500년 지난 오늘 거닐고 있다. 과거를 걸으며 현재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웅진 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이 모인 이곳에서 1971년 무령왕릉을 발견했다. 숱한 세월의 겹을 벗겨 첫 역사의 무늬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후 20년간 관람객에게 공개했던 무령왕릉은 보존을 위해 문을 잠갔고, 고분군 전시관에 그 모형 그대로를 재현해 두었다. 왕이 잠든 자리는 천장부터 곡선을 그어 내려오는 연꽃무늬 벽돌이 치밀하게 쌓여 단단하게 펼쳐진다. 백제가 추구하던 아름다움이 오늘과 다를 바 없음을 느끼게 한다. 송산리고분군에는 모두 7기의 무덤이 있다. 동쪽에는 1호부터 4호분이, 서쪽으로는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능선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 무덤은 1500년 간극이 무색하게 당당하고 생동하는 감촉이 느껴진다.
공주공산성
송산리고분에서 차로 3분 거리에 공산성이 자리한다. 웅진백제시기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다. 왕이 사는 곳과 왕을 묻은 곳이 이토록 가깝다니, 백제인의 삶과 죽음이 이러했을까. 난공불락의 요새로 더할 나위 없었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고대왕국의 찬란했던 향취가 가슴 깊이 다가온다. 금강을 낀 공주시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걸어보면 좋겠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취가 남은 마곡사
마곡사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봄은 마곡사, 가을은 갑사’라는 뜻의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오르내리는 천년 고찰이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영산전을 비롯해 오층석탑, 대웅보전, 대광보전 등 사찰 전체가 보물이라고 할 정도로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던 백범당도 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군을 처단한 선생은 옥살이 중 탈옥을 감행한다. 그리고 산세가 깊은 마곡사에 잠시 은거하며 ‘원종’이란 법명으로 출가해 수도했다.1898년 마곡사를 떠난 선생이 50년 만에 돌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린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게 꿈만 같구나’란 글을 보고 감개무량하여 심은 향나무가 지금도 백범당 옆에 푸르게 자라고 있다. 출가 당시 머리를 잘랐던 삭발 바위와 징검다리 그리고 송림욕장을 잇는 백범 명상길도 조성되어 있다.
공주백범당
공주마곡사
마곡사와 백범 김구 선생의 인연은 짧았지만, 마곡사는 한평생 독립을 위해 살았던 백범의 위대한 삶과 업적을 높이 기리고 있다. 마곡사 앞 개울가에 연등이 흐드러지게 달려 있다. 단단한 씨앗을 뚫고 싹 틔운 연꽃같이 공주의 깊은 세월도 그렇게 꽃을 피웠나 보다.

충남 공주 _Travel Tip_
연미산자연미술공원
공주
산의 생김새가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연미(燕尾)산은 높이 192m로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여기에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통해 국내외 작가 50여 명이 선보인 작품들이 연미산 진입로와 등산로 등에 설치되면서 연미산자연미술공원으로 조성됐다. 자연경관에 그대로 스며든 작품들과 자연이 곧 작품이 된 풍경을 감상하며 20분 남짓 오르면, 굽이굽이 흐르는 금강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봄의 정취를 흠뻑 느껴보자.

밤 파이 VS 알밤 찹쌀떡
공주밤파이
공산성 앞,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옥 빵집이 있다. ‘베이커리 밤마을’은 공주에서 밤 빵을 제대로 만드는 곳으로 꼽히는 곳. 바삭한 페이스트리에 인공색소를 가미하지 않은 통밤이 들어간 밤 파이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밤과 우유만 넣지만 담백하고 속이 든든해지는 밤 라떼도 인기 메뉴다. 근처 산성시장에서 유명한 부자떡집 알밤 찹쌀떡도 놓칠 수 없다. 쫄깃한 떡 속에 수제 팥으로 감싼 밤이 통째로 들어있어 한입 먹으면 눈이 커지는 맛이다. 공주 밤이 여행에 즐거움을 더한다.

국립공주박물관
공주
송산리고분군에서 지척인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의 실제 유물을 상설 전시한다. 도굴되어 주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고분과 달리 1971년 발견한 무령왕릉에선 무려 4,6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나라를 다시 부강하게 하였다”고 말한 무령왕은 실제로 501년 즉위한 뒤 내외로 흉흉하던 백제를 안정시켜 중흥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전시실은 존경하는 왕에게 보내는 백제의 헌사로 가득하다. 무덤을 지키는 상상 속 동물 진묘수, 금을 펴고 금실을 꼬아 만든 장식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무령왕이 호령한 백제가 눈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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