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날씨는 평균적으로 예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따뜻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세계기상기구(WMO)가 동태평양 수온이 낮아지는 라니냐의 발생 확률이 60%라고 예측함에 따라 예전처럼 영하 18도 이하의 극심한 추위도 함께 찾아오는 등 날씨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따뜻한 겨울 속 최강 한파도 찾아올 것이라는 얘기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혹한으로 인한 한랭질환에 시달릴 수도 있다. 영화 <남한산성>을 통해 한랭질환을 알아본다 명나라와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싸우던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새로운 군신 관계를 요구하자, 조선은 민족의 자존과 명과의 의리로 청에 저항한다. 청은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고 조선의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의 이야기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로 시작하는 영화 <남한산성>(2017)은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인조와 조정 대신들의 깊은 고뇌와 대립, 그리고 한겨울의 혹한과 배고픔에 떨어야 했던 군병들의 47일간의 ‘험난하고 시린’ 고난을 그렸다. 인조의 번민과 군병들의 고통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산성 안에서는 청과의 화친을 통해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에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자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대립이 극에 달한다. 주화파는 굴욕을 당하더라도 살아남아야만 나라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고, 척화파는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들 사이에서 인조 (박해일)의 우유부단함이 계속되며 나라의 운명도 산성에 함께 갇힌다. 그 사이 성첩을 지키는 군병들은 밤새 눈보라에 손가락이 얼어 창도 제대로 쥐지 못하고 찬 기온에 꽁꽁 언 발만 구르고 있다. 불을 지필 수도 없다. 불을 지피면 적에게 성벽 위 병사들의 위치를 들킬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턱없이 부족한 식량과 옷가지로 군병들의 배고픔과 추위는 극에 달한다. 다행히 대장장이 서날쇠(고수)와 그의 동생 칠복(이다윗)의 요청으로 가마니가 제공돼 군병들의 추위를 그나마 덜어주지만, 이마저 말들에게 줄 먹이가 부족해지자 모두 회수된다. 조정의 팽팽한 대립 속에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급기야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말들마저 죽어 나간다. 죽은 말들은 군병들에게 고깃국으로 배급되지만 군병들은 이왕이면 살이 좀 쪄 있을 때 잡았으면 좋지 않았겠냐며 고관들을 조롱한다. 나라에 대한 기대도, 믿음도 없다며 얼어 죽든, 굶어 죽든, 청군에 죽든 어차피 죽을 목숨 무서울 게 없다는 태도다.
한랭질환, 그리고 돼지기름 거친 눈보라와 눈안개가 산꼭대기 능선을 따라 흐르는 남한산성을 짙게 가두고 있는 모습은 성벽을 지키는 군병들이 느낄 한기를 극대화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군병들의 손과 발, 얼굴은 얼어 터지고 얇은 옷은 습기에 젖어 추위를 배가시키니 청군과 싸우기도 전에 이미 혹한의 공격에 무너져 발가락이 빠지고 피부가 짓무르고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실제로 사람은 혹한에 장기간 노출되면 저체온증, 동창, 동상, 침족·침수병과 같은 한랭질환에 걸릴 수 있다. 극심한 저체온 상태가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심한 동상에 걸려 피부가 괴사하면 동상 부위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눈이나 물에 젖은 축축한 장갑이나 양말, 신발을 오래 착용하면 침족 ·침수병에 걸려 피부 짓무름도 발생한다. 군병들은 이미 중증의 한랭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셈. 그들의 고통이 안쓰러웠는지 척화파 김상헌이 격서 전달을 위해 성 밖으로 내보낸 날쇠의 소식을 듣고자 칠복을 찾아오면서 돼지기름을 하사한다. 돼지기름이 동상에 좋다는 이유에서다. 군병들이 돼지기름을 나눠 받고 상처 부위에 문지른다. 동의보감에는 ‘돼지기름, 오소리기름, 참기름, 잣기름, 송진, 황랍을 각각 졸여서 찌꺼기를 제거한 후 혼합해 고약을 만들어 동상을 치료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외 의서들에도 ‘돼지기름이 혈맥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풍열과 피부 풍을 풀어주며 악창에도 붙인다.’라고 돼 있다. 돼지기름의 찬 성질은 열증을 내려 피부 염증을 가라앉힌다. 그래서 돼지기름을 넣은 한방원고가 튼살, 동상, 화상 등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병자호란 치욕의 날 군병들의 불만은 커지는데 적의 진지가 있는 삼전도에는 칸까지 도착하고 청군이 속속 몰려든다. 조정에서 날쇠를 설득해 산성 인근의 거대 근왕병 진영에 격서까지 보냈으나 청의 기세에 눌린 진영에서는 결국 출격하지 않는다. 조정의 희망이 사그라드는 사이 기세가 오른 청은 근왕병 진영을 공격해 초토화하고 산성 안까지 쳐들어온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조정은 결국 항복을 선택하고 인조는 청 태종에게 가 굴욕스럽고 치욕적인 항복의 예를 치른다. 역사는 1637년 1월 30일, 이날을 병자호란의 치욕, 삼전도의 치욕이라 부른다. 가슴 시린 역사와 함께 유독 추웠던 1637년의 겨울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남한산성>이다. 다행히도 올해는 예년보다 따뜻할 거란 예보다. 하지만 혹한도 종종 찾아온다고 하니 방심하면 안 될 듯. 한랭질환이 생기면 되도록 빨리 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 체온을 높이고 상처 부위를 따뜻한 물에 조심스럽게 담가 혈액순환을 촉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혹한의 공격에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한랭질환 예방 수칙을 준수해 건강한 겨울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