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억새 물결 가득한 정선 민둥산 정선이라는 이름에는 왠지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람에 물결치는 억새와 사각거리는 소리, 하늘과 맞닿아 반짝이는 모습은 정선과 닮은 가을의 민둥산 풍경이다. 9월 말 피기 시작해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억새가 절정을 이루는 기간에는 억새꽃축제가 열린다. 보슬보슬 비 내리는 늦가을, 민둥산 억새를 찾아 나서는 길은 운치가 물안개처럼 퍼진다. 해발 1,118m 민둥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총 4개 코스가 있다. 산행객들은 증산초등학교를 출발해 쉼터를 거쳐 정상에 이르기까지 2.6㎞ 코스와 능전마을을 출발해 발구덕을 지나 정상까지 3.3㎞ 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발구덕마을은 예전부터 민둥산에 기대 살던 마을이다. 주민들은 산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궜고 그렇게 얻은 산나물로 보릿고개를 연명했다고 하니 척박한 땅에서 자란 억새도, 강인한 민초들의 삶도 애잔하게 느껴진다. 정상까지 한 시간 반쯤 걸리는 산행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다. 가파르고도 군데군데 미끄러운 길을 제법 오르다가 7부 능선을 넘어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사방으로 은빛 억새가 끝없이 펼쳐진다. 동작을 맞춘 무용수처럼 바람에 일제히 춤추는 억새 물결이 힘들었던 등산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산 아래쪽 백록담을 닮은 ‘돌리네(doline)’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주민들이 ‘구덕’이라고 부르는 민둥산 돌리네는 석회암으로 이뤄진 산이 오랜 세월 빗물에 녹으면서 생긴 웅덩이다. 최근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며 젊은 세대들의 인증샷 명소가 됐다고. 민둥민둥한 이름과 달리 민둥산의 늦가을은 다채로운 아름다움으로 자연과 하나 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산골 마을 정취 그대로, 아라리촌 마음에 그리는 고향 같은 곳으로 정선을 떠올리는 데는 한국인의 증표와도 같은 아리랑이 한몫할 것이다. 첩첩이 빼곡한 산자락과 산과 산 사이로 휘어 흐르는 강물, 산골 생활의 고단함과 그럼에도 잃지 않았던 낙천성이 정선아리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라리’라고 불리는 정선아리랑이 품고 있는 생활과 풍속을 찾아 아라리촌으로 향한다. 아라리촌은 약 34,000m2(1만 300여 평) 너른 터에 굴피집, 귀틀집, 돌집 등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그대로 재현한 곳이다. 척박한 땅을 맨손으로 일궈 살았던 산간 지방 사람들의 지혜가 묻어나는 전통 가옥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정선에서 썼다는 풍자소설 ‘양반전’의 장면 일부를 본떠 만든 동상과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양반의 온갖 형식과 권위, 허례를 풍자하는 재치에 절로 웃음이 난다. 마을 구석구석을 채우는 정선아리랑 가락이 기댈 곳 없는 민중의 마음을 다독이는 듯 들린다. ‘아라리’란 ‘누가 나의 처지와 심정을 알리’에서 연유된 말이라고 한다.
독립의 염원을 담은 저항의 노래, 아리랑 아라리촌 구경을 마치고 발걸음을 옮겨 바로 옆 아리랑 박물관으로 들어선다. 아리랑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5천여 점의 자료가 전시된, 말 그대로 아리랑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곳이다. 아리랑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감성과 역사뿐만 아니라 내재된 힘의 이유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아리랑은 조선 시대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민요를 넘어 우리 민족의 한을 상징하는 노래로 거듭났다.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자 일제는 불온한 노래라 트집 잡아 1929년 아리랑 금창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아리랑은 독립운동에 활용됐고, 독립군들은 당시 새로운 군가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리랑을 공식 군가로 채택해 ‘광복군 아리랑’을 불렀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김산 선생은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 고개 너머 죽음 위에 피는 꽃이 조선의 독립이며, 아리랑은 일본군 3천 명을 전멸시킨 독립군들이 모여 부른 노래다.”라고 했다.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같이한 아리랑에는 우리의 역사적 고난과 이를 극복한 경험이 배어 있기에 단순한 노래를 넘어 한국인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정선 사람들은 아리랑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정선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들이 펼쳐지는 정선오일장에 맞춰 아리랑센터에서는 신명이 나는 ‘아리아라리’ 공연이 펼쳐진다.
눈도 입도 마음도 즐거운 정선오일장 정선의 자연에 낭만과 정취가, 가락에 멋과 흥이 있다면 오일장에는 넉넉한 인심과 정이 있다. 매월 2와 7로 끝나는 날짜에 열리는 정선오일장은 지역 주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청정자연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나물이 넘쳐나고 큰 솥에서 쪄내는 쫀득한 감자떡에 구수한 기름 냄새 풍기는 감자전과 메밀전병, 수수부꾸미 등 정선만의 먹거리가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소박한 세상살이를 사이에 두고 상인과 손님이 환하게 웃으며 만나고 헤어지는 곳. 정선오일장의 모습이다.
폐광을 가득 채운 예술의 향기, 삼탄아트마인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80년대만 해도 강원도 정선은 석탄산업의 활황으로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속, 한때 광부들의 숨결이 깃들어있던 삼척탄좌는 폐광 이후 버려졌다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2013년 문화예술공간 ‘삼탄아트마인’으로 재탄생됐다. 과거 기계를 수리하던 공간은 레스토랑으로, 지하갱도에 공기를 넣어 광부들을 숨 쉬게 했던 중앙압축기실은 원시미술관으로, 광부들이 노동 후 몸을 씻던 샤워실은 예술공간으로 변모한 것.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표어가 남아있는 미술관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와 예술을 동시에 느껴보자.
자연과 스릴을 동시에, 병방치 전망대 가파른 산줄기 사이로 아찔한 햇살과 파란 바람이 일렁이는 곳. 정선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담으러 병방치 전망대에 오른다. 본래 길이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던 귤암리 산골에 무려 600m 높이의 스카이워크가 세워지면서 아찔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반도 지형을 닮은 물돌이 마을을 동강 물줄기가 감싸 안고 흐르는 풍경을 바닥이 유리로 된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보자니 마치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정선의 비경을 더욱 짜릿하게 느끼고 싶다면 짚와이어를 타보는 것을 추천한다. 계곡과 계곡 사이를 시속 70㎞의 속도로 아찔하게 가로지를 수 있는 짚와이어는 길이 1.1㎞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정선의 시간을 품은 정겨운 먹거리 청정 고장 정선에서 입소문을 타며 정선의 맛으로 자리 잡은 음식이 있다. 후루룩 먹다 보면 쫄깃한 메밀 면발 끝이 콧등을 딱 때린다는 콧등치기국수, 메밀 반죽을 솥뚜껑에 얇게 펴고 배추를 넣어 부치는 메밀전과 김칫소를 넣은 메밀전병, 수숫가루를 익반죽해 둥글납작하게 빚은 뒤 팥소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지진 수수부꾸미는 정선의 정겨운 먹거리. 황기족발도 빠질 수 없다. 정선의 특산물인 황기로 삶아 잡내가 없고 식감이 부드러워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메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