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하게 치솟은 빌딩 숲을 벗어나 포항의 자연 속에서 잠시 숨을 돌려본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풍경화 같은 공간에는 다채로운 색깔의 명소들이 보석처럼 곳곳에 박혀 있다. 포항이 선사하는 아찔한 경험, 스페이스워크 요즘 여행 트렌드는 ‘점의 여행’이라고 한다. 여행지 전체를 훑기보다는 어느 하나에 꽂히면 오직 그것을 보기 위해 찾아가는 걸 선호하는 방식이라고. 그리하여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것이 바로 스페이스워크다. 영일만 바다를 바라보는 환호공원에 설치된 국내 최초이자 최대 체험형 조형물로, 철강의 도시답게 철로 된 333m의 우아한 곡선 형태의 계단을 걸으며 포항의 도심과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포스코가 포항시민에게 기부한 ‘작품’으로 독일의 세계적인 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가 구름 위를 걸으며 마치 공간과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중간에 있는 360도 구간을 제외하고는 안전하게 걸을 수 있지만 호기롭게 올라갔다가 주저앉는 사람도 여럿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 이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영일만으로 툭 터진 시야가 허공을 떠다니는 착각을 일으키는데, 여기에 바람이 휘휘 불어 진동까지 더해지니 머리카락이 쭈뼛할 정도로 매운맛을 선사한다. 롤러코스터 같기도 하고 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용처럼도 보이는 이 거대한 조형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밤이 되면 스페이스워크에 불빛이 켜지고 영일만을 두른 포항도 빛을 내기 시작한다. 푸른 휴식의 바다, 영일대해수욕장 스페이스워크의 푸른 배경이 되어주는 영일대해수욕장은 여름 피서의 성지이자 포항시민의 대표적인 핫플로 꼽히는 곳이다. 국내 최초 해상누각인 영일대 전망대가 바다로 길게 뻗어 풍경에 운치를 더한다. 길이 1,750m에 이르는 깨끗하고 고운 모래 해변을 맨발로 걷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중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눈에 띈다.
마치 울릉도와 독도로 가는 길목인 포항 바다를 장군이 지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른손에는 붓을, 왼손에는 역사책을 쥐고 있는 모습 아래는 ‘바른 역사의식이 나라를 지킨다’라고 쓰여 있다. 침략의 역사가 깊게 남아있는 포항에서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100여 년 전 그때로, 일본인 가옥거리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의 주요 항구와 포구에 적지 않은 자국민들을 이주시켰다. 인근 어장의 수산물을 본국으로 가져가고 어업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는데 구룡포의 일본인 가옥거리도 이런 연유로 생긴 마을이다. 100여 년 전 이 마을의 중심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지역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치안을 담당했다. 부유해진 일본인들은 집을 지었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음식점, 제과점, 술집, 백화점, 여관 등이 들어선 거리는 날로 번창했고 구룡포 최대 번화가로 성장했다. 지금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을 보면서 당시 구룡포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짐작해본다. 종전 후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남겨진 거리는 이곳에 존재했던 사람과 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지은 집으로, 2층으로 된 목조가옥을 짓기 위해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왔다고 한다. 건물 내부는 당시 부유했던 일본인 가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근대역사관에서 나와 언덕을 향해 돌계단을 오르면 구룡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공원이 나온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로 손꼽혀 일제가 신사와 송덕비를 세웠던 곳이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계단 양옆으로는 120개의 돌기둥을 세워 구룡포항 축항에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 지금 이곳에는 구룡포를 상징하는 아홉 마리 용 조각상과 대한민국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충혼탑이 세워져 있고 돌기둥에 새긴 일본인들의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포항시가 남아있던 가옥을 재정비하여 조성한 일본인 가옥거리는 몇 해 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 장소로 이용되면서 새로운 ‘감성 여행지’로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100년 전의 시간을 오롯이 품은 이 거리를 걸으며 우리가 만들어갈 내일의 역사를 한번 그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