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였던 부산. 전쟁의 기억이 깊게 남은 부산에는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안식처인 유엔기념공원이 있다. 평화를 위해 헌신한 젊은 넋들이 잠든 이곳에는 여전히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엔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한 부산에서 자유의 가치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고귀한 장소를 찾았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영혼이 잠든 안식처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22개국 175만 5,000여 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약 4만 1,000명이 희생되었다. 전쟁 중에 유엔군 사령부는 인천과 개성 등 여섯 곳의 임시 묘지에 유해를 안장했다가 이후 1951년 전쟁의 포화가 한 발짝 비껴있던 부산에 묘지를 조성했다. 전쟁이 끝나자 우리 정부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젊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묘지가 설치되어 있던 토지를 유엔에 기증하고 성지로 정할 것을 건의했다.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엔기념묘지는 이렇게 해서 부산 남구에 자리 잡게 됐다. 약 13만 2,200m2㎡(4만여 평)의 유엔기념공원 안에는 총 11개국, 2,300여 명의 전사자들이 사라지지 않을 영웅의 이름으로 잠들어 있다.
평화의 길에서 만난 청춘의 이름들 유엔기념공원은 추모관과 기념관, 상징구역, 주묘역, 녹지구역 등으로 구성되었다. 상징구역에는 튀르키예, 그리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태국, 필리핀 등 참전국의 기념비와 함께 22개의 유엔참전국 국가와 태극기, 유엔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유엔기는 유엔군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게양한다. 묘역에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장미가 헌화하듯 피어있다. 이곳의 묘는 모두 크기가 같다.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희생이 똑같이 숭고하기 때문이다. 햇살이 깊게 드리운 묘비 사이의 길을 따라 '도은트 수로'에 선다.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자(당시 17살)인 호주 병사 도은트 일병의 성을 따 만든 길이 110m의 물길이다. 비단잉어와 금붕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하듯 물길을 따라 천천히 유영한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로 발길을 옮긴다. 한국전쟁 중 전사한 유엔군 4만 896명의 이름이 오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깨알같이 새겨진 이름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라는 이해인 수녀의 헌시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평화와 자유의 길에서 만난 용사들의 이름은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누군가가 닦아 놓은 터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희생으로 다져 놓은 역사를 기억하며 우리의 삶의 길도 한 번쯤 돌아보면 좋겠다.
부산을 품은 해안 길, 이기대 해안산책로 푸른 바다를 벗 삼아 걷는 길은 걸음걸음마다 설렘이 가득하다. 탁 트인 경관을 바라보며 맑은 산 공기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동시에 들이켜면 일상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훌훌 날아간다. ‘이기대(二妓臺)‘는 수영의 두 기생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수영성을 함락시킨 뒤 축하 잔치를 열었는데 두 기생이 술 취한 왜장과 함께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순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기대를 따라 조성된 4.7km의 산책길을 걸으면 기암절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오르막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면 눈앞에서 파도치는 바다와 만날 수 있다. 트레킹 명소이자 감성돔이 낚이는 좋은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산길을 통해 언덕을 넘으면 어느덧 오륙도(五六島) 해맞이공원이다. 오륙도는 용호동 앞바다의 거센 물결 속에 솟아있는 바위섬으로, 동쪽에서는 섬이 6개, 서쪽에서는 5개로 보인다고 해서 오륙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불린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유리 바닥으로 된 스카이워크가 설치돼 있어 짜릿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자연과 함께 걷는 동안 어느새 걱정은 사라지고 푸른 바다만이 마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