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그리스의 산토리니, 스위스 알프스 등 낭만적인 장소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실제로 유럽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다. 그러나 낭만적인 겉모습과 달리 유럽은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로 600여 회가 넘는 치열한 영토 분쟁을 거듭해 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고통이 수반되었고 그 역사를 거쳐 지금의 지도가 완성됐다. 김종성 제12대 이사장의 저서 『유럽사를 바꾼 독립운동 이야기』는 그들의 역사와 우리나라가 세계적 강국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할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다. '느슨함'으로 '단단함'을 만드는 지혜 “남의 땅을 넘보지 않지만 내 땅을 한 뼘도 내어줄 수 없다.” 스위스의 중립 정책은 역사가 깊다. 1512년 스위스 동맹은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북이탈리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밀라노 공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515년 마리냐노 전투에서 프랑스와 베네치아 연합군에 패배한 후 더 이상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았다. 30년 전쟁, 보불 전쟁, 1·2차 대전 때에도 중립을 지켰다. 스위스는 그렇게 자신들만의 길을 열었고,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끊임없이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다. 1848년 스위스 동맹은 내전의 종식과 함께 연방국가로 새 출발했다. 작은 나라일수록 단일성이 강화되기 마련이지만, 스위스는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여러 차례 내전을 겪어낸 스위스가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성을 중시하고 상호 존중하는 이념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 아닐까. 저자는 이를 ‘느슨함’으로 ‘단단함’을 만드는 능력이라 표현한다. 강인한 민족정신으로 자유를 일궈낸 지해 아일랜드의 수난은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노르만 왕조를 세운 후부터 시작되었다. 1171년 헨리 2세의 더블린 점령을 시작으로 무려 750년간 영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1592년과 1690년 아일랜드의 세력층은 긴 투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1791년 종파 간의 갈등을 통합해 하나의 나라를 만들고자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아이리시 연합이 창설됐다. 1798년의 대규모 무장봉기는 로버트 조이스의 노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보리밭’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강인한 민족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다. 봉기 때 많은 소년들이 처형되어 집단 매장되었는데, 그들이 식량으로 지니고 있던 보리와 귀리에서 싹이 돋아 몇 년 후 그곳은 보리밭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내에서 여러 봉기와 운동 등을 펼쳤고, 이러한 노력에는 국토 밖에 있는 아일랜드 이민자들 또한 한마음이었다. 그들은 조국을 외면하지 않았다. 1858년 페니언 형제회를 조직하여 기금을 모으고 채권을 발행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19세기 말에는 아일랜드의 고유한 민족 정체성 회복을 위한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났다. 1916년 4월 24일의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인들의 저항을 결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1937년 아일랜드는 자치령의 지위에서 벗어나 완전 독립을 달성하였고, 1949년 영연방에서도 탈퇴했다. 2014년 영국과 아일랜드의 윈저성 회합으로 북아일랜드 문제가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북아일랜드의 선택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오랜 피지배 민족으로서의 공감 한국 독립군을 도왔던 유럽의 나라는 어디였을까. 아일랜드인 조지 루이스 쇼는 독립운동을 도운 고마운 인물이다. 배편을 이용해 3·1독립만세운동 이후 백범 김구와 독립지사들을 상하이로 망명할 수 있게 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고, 대원들을 숨겨주는 등 의열단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어쩌면 그는 같은 피지배 민족으로서 우리 민족의 아픔에 공감해 한국 독립군을 도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 세계의 대세를 보라.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인도의 독립은 가까이에 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체코군단은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해방된 뒤, 한국 독립군에게 무기를 팔았다고 한다. 1920년대 독립군 전투에 체코군단의 무기가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체코 군단의 장군 가이다는 안창호, 여운형, 이광수를 만나 한국의 독립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1920년 독립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이다는 “나의 조국도 수백 년 노예의 치욕을 당하다가 지금 부활하였소. (중략) 나는 귀국의 전도를 혁혁한 희망으로 보오. 지금은 비록 일본이 귀국을 압박할지나 세계의 대세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용납할 시기가 지났소. 그러니까 귀국민이 통일과 인내와 용전으로써 나아가면 독립을 완성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유럽에 가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선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강과 공존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강대국과 인접한 완충 지역의 역사는 고달프다. 우리나라 또한 국권을 빼앗기고 일제의 억압 속에서 독립투쟁을 전개했던 역사가 있다. 『유럽사를 바꾼 독립운동 이야기』는 약소국의 독립운동 사례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그들의 지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해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공 전략을 배우고, 실패 원인은 반면교사로 삼아 더 나은 나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의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의 헌신과 민족정신, 결속력이 있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지혜를 배워나가야 한다. 스위스 앙리 기상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장병들이여, 그대들은 명예롭게 그대들의 나라에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