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확실성을 위해중앙보훈병원 감염내과 김춘관 전문의 어떤 질병이든 예단할 수 없다. 감염질환은 더욱 그렇다. 일상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감염병부터 전 세계를 휩쓸며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정체불명의 감염병이 나날이 늘어가는 가운데 감염병 전문의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대한백신학회 재무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3월 기획조정실장을 맡게 된 김춘관 감염내과 전문의를 중앙보훈병원에서 만났다.
“퍼즐을 푸는 걸 좋아해야 합니다” 김춘관 전문의는 감염내과 전문의의 자질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불확실한 질병을 진단해 나가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20년간 중앙보훈병원에서 감염질환 환자들을 보듬어 온 김춘관 전문의. 기획조정실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그가 병원의 다양한 현안을 어떤 해법으로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기획조정실은 병원의 전체 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이에 필요한 기획업무, 예산업무, 인적자원과 공간자원 활용 방안 등을 총괄해서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신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병원의 브레인이자 구성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책임이 큰 자리를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선, 새로운 자리에서 성급히 무언가를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기조실장으로서 3가지 마음가짐을 먼저 정해보았습니다. 첫째는 내가 속한 조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스로의 일이 가치 있다고 믿는 자긍심, 프라이드(Pride)를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뮤추얼 리스펙트 (Mutual respect), 상호존중입니다. 수평적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인식으로 존중과 경청의 자세를 새기려는 것이고요, 세 번째는 주어진 목표와 역할을 책임감 있게 완수하겠다는 의지, ‘최선을 다하자’(Do the best)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잠재력을 발휘하고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의 직장생활이 자아실현이 되고 재미있는 요소로 여겨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러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감염내과 의사에게 숙명과도 같은 신종 감염병, 코로나19를 대응하며 고군분투한 의료진의 수고를 빼놓을 수 없다.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중앙보훈병원의 역할에도 무게가 실린다. 먼저, 환자의 안전을 위해 최전방에서 밤낮으로 애쓰고 있는 모든 이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중앙보훈병원은 국가유공자분들의 진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면서도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고 호흡기질환자가 감염 걱정 없이 찾을 수 있는 국민안심병원으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재활센터를 활용해 경증, 중등증, 중증 환자를 위한 코로나 전담 병상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코로나 외래진료센터를 열어 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대유행 감염질환을 비롯해 고위험 병원체가 발생했을 때 더욱 안전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우리 병원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환자와 의료진, 직원들 모두 안전할 수 있도록 감염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코로나19 누적확진자 수가 1500만 명에 육박하면서(4월 8일 기준) 집단면역으로 인한 유행감소 시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완치 이후에도 다양한 증상으로 불편감을 겪는 롱코비드 증후군(Long COVID Syndrome)을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춘관 전문의의 견해와 조언은 무엇일까? 지난 11월에 등장하여 유행하는 오미크론은 델타 바이러스에 비해 중증화율이 높지 않고 전파력이 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로 전인구의 4분의 1이 확진되면 일시적으로 집단면역이 형성된다고 보므로, 5월까지는 어느 정도 유행이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예전 수준까지 이르지 않고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완치된 이후에도 피로감과 숨참, 기침, 가래, 냄새를 잘 맡지 못하거나 맛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 등을 3개월가량 특별한 진단명 없이 겪게 되는 것을 ‘코로나 후유증’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신체적 증상을 보이기에 보통 몸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쉽지만, 신종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 우울감 등 심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일상적인 활동을 유지하면서 안정감을 가지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있어요. 기획조정실장으로서 그는 중앙보훈병원의 다음 도약을 위해 세심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환자 안전과 건강증진’이라는 본연의 임무도 잊지 않는다. 고령의 국가유공자 환자가 많은 우리 병원에서는 노인성 감염이나 와상환자에게 생기는 폐렴, 욕창으로 생기는 감염, 요로감염, 그리고 절단환자의 골수염 등 정형외과 감염이 많습니다. 기존의 지식 기반뿐만 아니라 경험에서 배어나오는 것으로부터 환자의 상태를 판단해야 할 때도 있죠. 노인성 질환과 만성질환에 특화된 보훈병원의 장점을 살려 환자분들께 최선의 치료를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기획조정실에서는 현재 최상급 공공병원으로 도약을 위해 우리 병원만이 할 수 있는 방향성을 찾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략방안을 수립 중입니다. 우선 진료부서의 의견을 수렴하고 실태를 분석해 ‘중점추진사업 10대 과제’를 선정하여 추진할 계획 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대응, 교육·연구 활성화, 스마트 병원 구축을 우선순위에 두고 장·단기 계획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갈 것입니다. 국가유공자와 지역주민, 더불어 의료 취약계층을 아우르며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조실장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김춘관 전문의에게 중앙보훈병원은 환자와 교감하고 고통에 공감하는 의미를 일깨워준 곳이다. 중앙보훈병원에 처음 근무했던 20년 전만 하더라도 통증치료가 필요한 상이유공자분들이 많았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를 장기간 투여한 환자가 용량 처방을 해달라고 찾아오는 일이 잦았는데요,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을 문제로 제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마찰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분들과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는 일도 종종 일어났죠. 그러다 보니 미운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대화하면서 가까워졌고 나중에는 저를 신뢰하며 마음을 열어 주셨죠. 그런 일이 있었기에 제가 보훈병원에 오래 근무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최근에 그분들 중 몇몇 분이 돌아가셨고 아직도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여러 가지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에는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싶었고, 남들보다 뛰어난 의학지식을 갖춘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생각했어요. 레지던트 때는 밤새 환자의 바이탈 사인을 지켜보면서 의학지식도 중요하지만, 열정이 있는 의사가 훌륭하게 느껴졌고요. 보훈병원에 와서 환자들과 함께 나이 들다 보니 환자의 고통이나 죽음이 어느 순간 큰 아픔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전과 다르게 환자의 감정을 오롯이 내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죠. 환자와 소통하고 교감하며 얻어진 것들이 저를 성장시키고 노력하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진단도 치료도 결국 사람을 향한다. 병원의 미래 방향을 정하는 자리도 그렇다. 그는 어떠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기보다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신뢰가 질병의 치료 효과를 높이듯, 조직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리더와 구성원 간에 공동체적 유대와 친밀감이 있어야 합니다. 긴 시간 정성을 쏟은 보훈병원에서 직원들이 저를 생각할 때 함께 일해서 즐거웠던 사람, 상대의 입장에 서며 눈높이를 맞췄던 편안한 동료로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