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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보는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스트레스는 기본적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주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스트레스로 인한 적당한 긴장은 집중력과 창의력, 생산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는 자신의 실수로 세 자녀를 잃은 남자가 등장한다. 상처와 죄책감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갇혀 사는 인물이다. 줄거리만 보면 슬프고 어두운 내용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2016년 개봉해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 깊이 있는 수작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소개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 본다.
마음을 통째로 잃은 한 남자 이야기
주인공 '리'(케이시 애플렉)는 보스턴의 낡은 아파트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중년의 사내다. 그는 고장 난 싱크대, 막힌 변기, 새는 파이프 등 잔고장이란 잔고장은 모두 고치며 살아간다. 연인도, 친구도 없고 딱히 혼자 즐기는 취미 생활도 없는 듯 보인다. 일이 없을 때 리가 하는 행동은 막돼먹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아무나 붙잡고 주먹을 날리고, 이후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한테 얻어맞기 일쑤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부러 얻어맞으려 작정한 듯 시비를 건다. 그는 가구도 몇 개 없는 작은 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표정에서 생기나 활력은 찾아볼 수 없고 취향이나 호기심, 유머 같은 인간적인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이 텅 빈 상태다.
이러한 감정의 황폐화는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리 뇌는 견딜 수 없는 기억으로 발생하는 정서적·신체적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감정과 신체 감각을 전달하는 뇌 회로의 기능을 정지시킨다. 마치 옛날 무술영화에서 독침을 맞은 주인공이 독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혈자리를 눌러 몸을 마비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실제로 이들의 뇌를 스캔한 연구 결과를 보면, 신체 감각을 인식하는 뇌 영역들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고통을 잊기 위해 감정을 마취시키면 두려움, 불안, 죄책감,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뿐만 아니라 긍정적 감정도 느낄 수 없게 된다.
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 따라가 보는 이 여행의 길 끝에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라는 작은 동네가 존재한다. 미 동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항구 마을 이름이다. 흔히 고향 하면 향수와 그리움이 떠오르지만, 그에게 고향은 화마 같은 상처만 남아있다.
엄청나게 추웠던 겨울 어느 날, 리는 여느 때처럼 친구들을 집에 불러 질펀하게 술을 마신다. 아내 '랜디'(미셸 윌리엄스)가 시끄럽다며 친구들을 쫓아냈지만, 맥주를 더 마시고 싶었던 리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의 집은 코가 건조한 아내 때문에 중앙난방 대신 거실에 모닥불을 피워 놓았는데, 아이들이 자던 2층 방이 너무 춥다고 느껴 난로에 장작을 가득 넣고 나서 집을 나선다. 돌아오면 한결 따뜻해진 공기를 기대하면서. 조금 걷다가 모닥불에 차단막을 안 치고 나온 걸 깨달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맥주를 사 와 보니 집이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다. 아내는 가스에 질식된 채 소방관에 구출되었지만 자고 있던 세 아이는 그렇게 모두 잃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플래시백'이 보여주는 PTSD 증상
리에게 아이들의 죽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이자 후회이며 죄책감의 근원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은 다른 불안증과는 다르다. 외상이 일어났던 비슷한 상황 뿐 아니라 어떤 단서가 없는 데도 갑자기 기억이 침입해 더 고통스럽다.
우리 뇌에는 공포, 불안감 등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있다. 편도체에서 느끼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다시 전두엽에서 통제가 되는데, 극심한 충격으로 인해 전두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공포감이나 불안감이 계속 나타나게 된다. 의지가 약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충격으로 인해 우리 뇌에서 오작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리에게는 그 외상의 단서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자신의 고향에 아로새겨져 있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그를 다시 불러온 건 형 '조'가 심부전으로 위독하다는 전화 한 통이다. 얼떨결에 고향에 돌아오긴 했지만 이미 형은 숨을 거둔 뒤였고, 형의 변호사에게서 자신이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서 형의 유언장을 보던 리가 과거를 떠올리는 플래시백 장면을 살펴보면, 현실과 과거 화재 사건의 기억이 교차 편집된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말하는 플래시백이란 회상을 위해 과거의 장면을 삽입하는 형식을 의미한다. 화재라는 정점의 사건으로 갈수록 플래시백으로 촉발되는 회상 장면은 점점 더 빠르게 변호사 사무실 장면과 교차된다. 즉 몸은 변호사 사무실에 있지만, 리의 정신은 계속 외상과 기억의 침입을 당하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출은 PTSD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인 플래시백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인공 리가 자신이 저지른 사고로 인해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낸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슬픔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사한 아픔을 가진 리와 패트릭이지만 두 사람은 소통하지 못한다. 패트릭은 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려 든다. 아버지가 죽은 날에도 친구들을 부르고 여자친구를 만난다. 밴드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이스하키 연습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하다 코치에게 제지당하기도 한다.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음속에 숨겨둔 외상을 쉽게 이해하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렇기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이 울음을 쏟아내는 장면은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긴다.
리는 그 사건 이후 이혼한 아내 랜디와 길거리에서 재회한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리는 어쩔 줄을 모르고, 리와 달리 새로 가정을 꾸린 랜디는 과거 자신이 리에게 모진 말을 하며 원망했던 것에 대해 울면서 용서를 빈다. 리는 차마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눈도 못 맞춘 채 말을 더듬는다. 여전히 뿌리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날 리는 자신을 벌주듯 술집에서 마구 얻어맞은 후 상처를 치료해주는 이웃의 품에서 흐느껴 운다.
타인의 슬픔을 대하는 영화의 시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섣부른 치유를 약속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의 슬픔이 애도로 변모할 것임을 조심스레 예견한다. 영화의 끝은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다. 얼었던 땅이 녹고 형의 시신도 비로소 땅에 묻혔다. 삼촌과 조카는 여전히 서먹하지만, 형이 남긴 배에서 낚시하는 두 남자의 모습이 조금은 덜 쓸쓸해 보인다. 카메라는 슬픔이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 삶은 끝내 살아지고 만다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더듬어간다. 맨체스터의 바다처럼 그냥 서로를 지켜보면서 시간에 기대어 천천히 살아보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다.참고자료: 씨네21,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스틸컷: 네이버 영화포토
중앙보훈병원에서는 군 복무 중 부상을 입은 전상군경 및 공상군경 등 상이자 중 PTSD 관련 증상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해 PTSD 전문 클리닉을 설치해 전문가 상담, 심리검사,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앙보훈병원은 PTSD를 포함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모든 정신건강 관련 질환에 대해 외래치료, 입원치료가 가능하고, 지역 보훈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외래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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