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는 수많은 침략에 저항해온 시련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키고 버텨낸 시간들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내는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알려주는 곳.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 강화의 깊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빽빽한 아파트가 늘어선 신도시에서 차로 2~30분이면 소담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 강화도에 닿는다. 강화대교가 있어 3분이면 건너갈 수 있지만, 과거에는 30분이 넘는 물길이었다. 그러므로 섬의 정취를 느끼면서 내륙처럼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라 할 수 있겠다. 강화도에 들어서서 곧바로 해안북로를 향해 북으로 달리면 도로 오른쪽으로 길게 펼쳐진 철책선이 보인다. 북한과 가깝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광경이다.
싸우고 물리치고 지켜낸 기록, 6·25 참전용사기념공원을 만나다 6·25 참전용사기념공원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해안가 도로변에 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이자 6·25전쟁 격전지 중 하나인 강화군에서 이러한 특성을 살린 공원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던 중, 6·25 참전용사기념비가 위치한 강화읍 용정리에 2016년 6·25 참전용사기념공원을 조성했다. 규모는 작지만 강화도 출신 307명의 참전용사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와 16개 참전국의 상징물, 개전부터 종전까지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과 한반도를 형상화한 조각물을 설치해 그 의미와 가치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헌병과 초소에서 근무 중인 병사를 만나게 되는데, 실제 군인으로 착각할 만큼 잘 만들어져 왠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음을 다시금 일깨운다. 긴 철책선을 따라 전시된 사진들은 중간중간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많다. 긴박했던 전시 상황과 처절했던 전투, 피란민들의 황망한 얼굴들이 불과 71년 전 일어났던 전쟁의 모습이라는 게 피부로 다가온다. “동족상잔의 불길 속으로 꽃다운 젊음을 던져 조국을 지켰노라.” 6·25 참전용사 기념비에 새겨진 글을 바라보며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본다.
실향민들의 두 번째 고향, 교동 발걸음을 옮겨 강화도의 서북쪽에 있는 교동으로 향한다. 옛 추억과 풍경을 간직한 또 하나의 섬인 교동도 역시 교동대교가 있어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민간인통제선 너머에 있기에 차량은 반드시 해병대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운전자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이름을 적으면 차량 출입증을 발급해준다. 군사지역이라고 하니 괜히 두근거리는 마음이지만,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이기에 색다른 느낌이다. 교동에서는 북한이 가깝게 보인다. 6·25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터전을 잡은 것도 이 때문. 교동에는 황해도 연백 출신이 많은데 이들이 고향의 연백시장을 본떠 만든 것이 대룡시장이다.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맛볼 수 있는 다방, 나이든 재단사가 일하는 양복점, 오래된 약방과 이발관 등 마치 1960년대 영화세트장 같은 모습을 간직한 가게들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마치 과거 시간 속에 머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강화도 특산물인 순무로 담근 김치도 사고, 황해도식 냉면과 만두, 강아지 떡 등 다양한 이북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복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대륭시장 구경을 마치고 나면, ‘뉴트로’한 분위기로 이국의 정취를 자아내는 바로 옆 파머스마켓도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아기자기한 장식류와 옷가지, 참기름병에 담은 밀크티 등 특색있는 먹거리와 플리마켓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화의 물길이 흐르는 평화전망대 실향민들의 삶의 터전에 다녀왔다면 이번엔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볼 차례다. 강화평화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을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북한까지의 거리가 불과 2.3km밖에 되지 않아 날씨가 맑을 때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바다 건너편으로 마주한 마을은 황해북도 개풍군으로 학교와 주택 등이 보인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농사일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주민들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전망대 정면으로는 멀리 송악산이 보이고 그 아래에 개성시와 개성공단이 위치한다. 전망대에서 개성시까지의 직선거리는 불과 18km로 강화도 남단에 있는 마니산보다도 가까운 거리다. 전망대 왼쪽으로는 예성강과 북한 최대의 곡창지대인 연백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고려시대에 가장 번성했던 벽란도가 바로 이 예성강 하구에 있다. 전망대 앞은 남북의 한강, 임진강, 예성강, 이 세 강물이 바닷물과 함께 평화롭게 흐르는 공간이다. 그러나 남북의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자 실향민의 안타까운 사연이 말없이 흐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빛나는 강가에서 손에 닿을 것 같은 저 너머의 통일을 기다려본다.
인천 강화도 _Travel Tip_ 강화의 직물 역사를 품은 카페, 조양방직
원래 조양방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방직공장이었다. 1960년대까지 국내 최고의 인조직물을 생산했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값싼 중국산 직물에 밀려 쇠락하게 되었다. 버려진 방직공장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미술관 카페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300평 넘는 공장 터와 건물 골조를 그대로 살려 시간의 이야기를 곳곳에 남겼다. 여공들이 일했던 작업대는 커피 테이블이 됐고, 사라진 것들의 자리는 세계 각지의 골동품으로 채워졌다. 커피 한잔을 들고 오래된 물건 사이를 헤매다 보면 ‘여긴 어디, 난 누구?’인가 싶은 기묘하고도 낯선 매력에 잠기게 된다.
전통문화의 혼, 화문석
예로부터 강화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고장이다. 특히 전국 유일의 왕골 공예품인 강화 화문석은 고려 시대부터 전수된 자랑스런 민족 문화유산이다. 강화는 39년 동안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강화로 이주한 왕실과 관료를 위해 최상품의 자리를 만들었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도안을 특이하게 제작하라는 어명을 받고 다양한 도안 개발과 제조 기술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문석 문화관을 방문하면 화문석은 물론 왕골 공예품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설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강화의 소울푸드, 젓국갈비
김장철이면 강화 외포리 젓갈시장은 눈에 띄게 분주해진다. 국내산 젓갈을 찾는 고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기 때문. 새우젓으로 유명한 강화도에는 유달리 새우젓으로 간을 한 음식이 많다. 특히 젓국갈비는 가난했던 시절, 큰 행사 때나 잡았던 돼지 뼈에 두부와 야채를 넣은 뒤 새우젓으로 간을 해 끓여 먹던 음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무신정권 시절, 고려 왕실 수도를 개성과 가까운 강화도로 옮겼을 당시 왕에게 진상할 음식을 고민하다가 강화도 최고의 특산물인 새우젓을 활용해 왕에게 진상한 음식이라는 설도 있다. 일단 한번 먹어보자. 담백하고 깔끔한 국물이 강화의 맛으로 오래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