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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를 닮은 건축물을 설계한 가우디와그가 앓았던 관절염
매해 2,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가우디의 유산을 감상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다.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로 칭송받는 안토니 가우디(1852~1926)가 남긴 건축물에는 자연과 곡선, 색과 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체의 뼈를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관절염으로 고생했던 그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며 자신의 신체와 자연을 탐구했고, 건축가가 된 후 뼈와 자연을 독창적으로 해석해 작품에 재현시킨 것이다. 그가 앓았던 관절염에 대해 알아보고, 질병이 투영된 그의 건축 세계를 소개한다.
그가 앓았던 관절염
그가 앓았던 관절염1. 해골형태의 발코니와 관절 모양의 기둥을 가진 카사 바트요 2. 주변의 돌과 흙을 쌓아 기둥을 만든 구엘 공원 3. 위에서 내려다본 카사 밀라 중정
그가 앓았던 관절염1. 아직 완공되지 않은 사그라다 피밀리아 성당 2. 파도를 닮은 동굴이 있는 구엘 공원 3. 카사 밀라의 안뜰
관절염을 앓던 소년, 자연의 곡선에 매료되다.
바르셀로나에는 ‘20세기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남긴 유려한 곡선 건축물이 여럿 세워져 있다. 이 건축물들은 워낙 기발하고 독특해 꼭 들러볼 만한 세계적 명소로 자리 잡았는데, 실제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들에겐 필수 코스나 다름없어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가 설계한 모든 건물은 벽과 천장의 곡선미를 살린 것이 특징으로, 녹아내릴 것 같은 외관과 물결치는 벽면 등 개성 넘치는 건축물은 현재 바르셀로나의 상징이 되었다.
가우디는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로 칭송받는다. 그의 독창성은 병약한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둔다. 어렸을 때부터 관절염을 앓았던 탓에 병약했던 가우디는 아픈 발 때문에 친구들과 뛰어놀기 어려웠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며 많은 시간을 홀로 보냈다. 덕분에 자신을 탐구하고 인간을 둘러싼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주목하게 됐다. 자연의 곡선미와 섬세함에 매료된 가우디의 생각이 반영되면서 일반적인 직선 형태가 아닌 곡선 형태의 건물들이 탄생한 것이다.
가우디의 건축 곳곳에 등장하는 뼈
가우디는 16세가 되던 해 건축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22세에 바르셀로나의 건축 대학에 입학한다. 가우디는 독특한 발상으로 교수들을 놀라게 하는데 학장은 가우디에게 졸업장을 주며 “건축가 타이틀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광인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평가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1877년 가우디는 직물업자였던 요셉 바트요의 의뢰를 받고 당시 부자들이 모여 살던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한다. 2년 간의 공사가 끝나고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의 ‘카사 바트요’가 완공되었는데 집은 기괴할 정도로 독특했다. 해골을 박아 넣은 듯한 테라스와 앙상한 무릎뼈 모양의 기둥 탓에 ‘뼈다귀의 집’으로 불리며 혹평을 받았다. 당시 일반인들은 ‘거리 외관을 해친다’고 비난했고, 전문가들은 “카사 바트요는 왜 건축가들이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하면 안 되는지 보여 준다”라며 평가절하했다.
카사 바트요뿐이 아니라 뼈는 가우디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구엘 공원의 산책로는 해면골 모양이고 담장은 등뼈를 닮았다. 공동주택인 카사 밀라의 천장은 고래의 갈빗대와 비슷하다. 가우디는 “인간의 뼈대와 나무의 기둥보다 훌륭한 구조물은 없다”고 말했고 해부학을 공부하기 위해 의과대학을 드나들며 수업을 들었다. 콘크리트와 철근을 사용해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20세기 초, 정형화하지 않은 가우디의 작품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가우디를 천재로 평가했다. 그가 탄생시킨 건물 7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모두에게 건축학적 의의를 인정받게 되었고, 그의 마지막 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의 건축 정신을 이어받은 장인들에 의해 그의 사후 10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틀에 박힌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그의 작품은 어느 양식에도 속하지 않는 ‘신(神)의 건축’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뜨거운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앓았던 관절염

가우디에게 관절염이 가져다준 명과 암
가우디는 여섯 살 때부터 관절염을 앓았다. 관절 통증은 가우디 일생 내내 완화와 악화를 반복하며 그의 생활을 고달프게 했다. 오늘날 알려진 바로는 가우디의 관절염은 어린 시기에 특별한 이유 없이 발생하는 ‘특발성 소아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감염, 자가면역성 질환, 신체적 부상,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한다. 소아 류머티즘 관절염은 완치되기 어렵다. 다만 70~90% 정도의 환아는 심한 장애 없이 생활할 수 있으며 10% 정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기능적 장애가 남는다. 요즘에는 염증 매개 물질을 생물학적으로 차단하는 주사제가 다양하게 나와서 통증을 조절하고 관절의 움직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당시 가우디는 관절염 치료를 위해 채식을 고집했다. 그 무렵 ‘위생이론’이 유행했었는데 깔끔한 음식과 정갈한 식단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다. 그는 평생 올리브유를 곁들인 샐러드와 견과류 등을 소량 섭취하는 엄격한 채식주의 식단을 지켰고, 발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발등이 천으로 된 푹신한 신발을 신고, 양말을 두 장 겹쳐 신었다. 낡은 고무를 밑에 대고 헝겊을 둘러 싸매고 다녀 보기에도 남루하고 누추했다. 동작이 느린 가우디는 길을 건너다 다가오는 전차를 피하지 못해서 치이는 사고를 당했는데, 사람들은 그를 부랑자라 생각하고 허름한 요양시설로 보냈다. 거기서 사흘 후 가우디는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에야 이 노인이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고질적인 관절염과 사투를 벌이며 뼈에 관한 관심을 작품 속에 녹여낸 가우디. 그가 남긴 위대한 건물 곳곳에서 그의 삶과 생각을 만나보길 바란다. 작품에 투영된 그의 경험을 이해하고 애정으로 바라보면 더욱 좋겠다.
그가 앓았던 관절염

참고자료·사진 출처 :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이지환 저, WikiArt. Naver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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