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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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 10월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위 세 선생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였던 선교사들이다. 특히 애비슨은 1919년 3월 초 일본 고위 관리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당한 요구를 대변하고, 3·1운동의 실상과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전보로 귀국길에 일본에 머물고 있던 캐나다장로회 총무 암스트롱(A. E. Armstrong)을 서울로 불러들여 3·1운동을 해외에 알릴 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은퇴한 후에도 미국에 돌아가 기독교인친한회의 재정을 맡아 임정승인과 독립운동지원 활동을 하였다. 그리어슨은 성진 지역 3·1운동을 적극 도왔으며, 마틴은 용정 지역 3.1운동과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병든 몸을 치료하는 의료선교사로 이 땅에 왔지만,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민중을 탄압한 총독부에 항의하며 그들의 만행을 세계로 알렸으며 그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지원하였다.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세 명의 선생은 모두 주시경 선생의 제자로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도 꿋꿋하게 한글을 연구하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데 크게 기여한 분들로서, 이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말의 보전과 과학적 연구가 가능했으며, 민족 언어를 지킬 수 있었다. 장지영 선생은 한글을 체계화하기 위해 김윤경·권덕규 선생 등과 1921년 12월에 조선어학회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해 한글연구, 표준어 확립 및 사전 발간 사업을 했고, 1927년 2월 최초 국어 전문잡지인 ‘한글’을 창간했다. 김윤경 선생은 조선어학회에서 추진한 한글 사업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위원으로 선임됐고, 1931년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 위원에도 선출됐다. 권덕규 선생은 우리 고전을 정리하고 간행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광문회 사업에 참여한 학자로 가로쓰기 운동을 통해 한글보급운동을 펼쳤다.

이달의 6·25 전쟁영웅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1952년 9월 6일 18시, 휴전 협상이 정체됨에 따라 중국군은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중동부 전선의 돌출부였던 수도 고지에 맹렬한 포격과 함께 집중 공격을 감행했다. 중대장으로부터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홍창원 소대장은 선두에서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다. 그러나, 모든 통신과 퇴로가 두절되고 압도적인 적의 규모를 이기지 못할 상황이 되자, 비장한 각오로 고지 부근에 진내사격을 요청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를 비롯한 소대원 전원이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달의 독립·전쟁 영웅

6·25 전쟁 당시 무주경찰서장이었던 그는 1950년 북한군 제4사단의 집중 공격에 밀려 후퇴하던 중 경남 함안군 여항면 일대에 배치되어 약 4,000명으로 편성된 혼성 경찰의 일원으로 미국 제25사단 및 국군과의 합동 작전에 참여했다. 이 작전에서 북한군과 치열하게 교전 중 북한군의 흉탄을 가슴에 맞고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와 경남 함안군 ‘6·25전쟁 참전경찰승전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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