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달뜨게 하는 높푸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 여기에 어울리는 근사한 풍경을 찾아 원주로 향한다.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줄 예술과 문학이 더해지니 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 소중한 가치를 품고 있는 원주의 깊이 있는 이야기가 정신을 맑게 깨운다.
원주, 어디까지 가봤니? “원주에 놀러 갈래?” 강릉, 속초, 양양 등 인기 있는 관광지가 많은 강원도에서 여행지로써 원주는 낯설게 느껴진다.반곡동 일원에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여러 공공기관이 이전한 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행정도시의 이미지. 보훈공단 본사도 2013년부터 이곳 원주에 자리 잡았다. 공단 창립 40주년을 맞아 공단의 새로운 고향, 원주의 다채로운 모습과 숨은 매력을 찾아본다.
높아진 하늘과 바람을 느끼는데 산보다 좋은 장소가 있을까. 여기에 아찔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금산 출렁다리다. ‘짠맛’을 연상하지 마시라. 경치가 아름다워 ‘작은 금강산’이란 이름이 붙은 ‘소금산’은 길이 200m에 높이 100m, 폭 1.5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고 높은 출렁다리로도 유명하다. 570여 개의 계단을 올라와 건너는 다리는 생각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고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는 풍광은 아찔하면서도 아름답다. 섬강을 비추는 가을 햇살이 반짝반짝 보석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이곳은 원주 시민 외에는 3천 원의 입장료를 받는데 2천 원을 원주사랑 상품권으로 내어준다.산에서 내려와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상품권을 내밀고 시원한 슬러시나 우유 아이스크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 하나를 바꿔 먹으면 환상적인 마무리. 즐거움이 배가 된다. 아이가 있는 가족 여행이라면 레일 파크가 좋겠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간현역부터 판대역 사이를 풍경 열차나 레일바이크로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다.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라 섬강과 소금산이 그려내는 산수화 같은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며 눈에 담을 수 있다.
원주에 뿌리내린 항일정신 원주의 역사와 옛이야기는 강원감영이 전해 준다. 원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감영은 조선 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청사로, 강원감영은 태조 4년에 설치되어 500여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을 거치며 무너진 건물과 연못은 23년간의 복원사업을 통해 다시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일몰 후 조명 빛이 수놓은 야경도 챙겨보면 좋을 아름다움이다. 강원 감영 사료관에서는 원주의 옛 모습과 더불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흘린 피와 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19년 3·1운동이 지방으로 확산해 투쟁의 열기가 들불처럼 번져갈 때 원주는 일제에 의해 집중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게 된다. 그해 3월 초, 원주보통학교 생도들이 고종 임금의 장례를 맞아 조의의 상징으로 삼베 천으로 만든 상장(喪章)을 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한 달간 25회의 만세운동이 일어날 만큼 항일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항일운동가 수만 102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렇게 항일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 일제는 3월 16일 춘천 79연대 소속 보병 20명을 원주에 증파하고 4월 초에는 본토에서 1개 중대의 보병을 추가로 파견, 경계 강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곳곳마다 만세 시위와 봉화 시위는 끊이지 않았다. 원주의 만세운동 참가자는 2천300여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검거된 인원은 140여 명, 재판을 받은 사람도 공식기록만으로 3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원주 사람들이 품고 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은 높고도 뜨거웠다. 원주에 보훈공단이 세워진 것이 뿌리내린 나라 사랑 정신으로 이어진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선생은 1980년 원주로 내려와 단구동에 정착했다. 지금은 박경리 문학공원이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담겨 있는 시간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선생이 18년 동안 살았던 옛집과 26년 동안 집필한 <토지>를 만날 수 있는 문학의 집, <토지>의 배경이 되는 풍경들이 올올이 엮여있다. 한 자 한 자 눌러 쓴 원고지 매수가 3만 매가 넘는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숫자로 긴 시간과 치열했을 삶을 어렴풋이 가늠해본다.
한국 문단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토지는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등이 지나간 1897년 한가위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 15일까지의 격동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에서는 선생이 의인이라 부르는 이가 여럿 나오는데 모두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한 투사였다. 박경리 선생은 이곳 하얀색 이층집에서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하면서 소설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아쉽게도 집 내부관람은 어렵지만, 박경리 선생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직접 만든 연못이 남아 있고, 직접 가꾸던 텃밭에는 여전히 토마토,고추 등이 자라고 있다. 비록 박경리 선생은 떠났지만, 그의 숨결이 남아 우리를 반긴다. 깊어지는 가을, 선생의 흔적을 만나며 마음 한 곳이 따뜻해진다.
강원도 원주 Travel Tip 산도 그림이 되는 곳, 뮤지엄 산(SAN)
원주 여행에서 1순위로 꼽히는 뮤지엄 산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자연 속 예술공간이다. 본관 내부의 종이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도 훌륭하지만, 이곳은 자연과 어울린 건축물 자체가 작품이다. 본관은 워터가든에 자리하고 있어 마치 물 위에 뜬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계절마다 다른 작품이 되어 주는 산과 그 속에 어우러진 건축물, 정원, 조각들은 시선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SAN(Space Art Nature)이라는 이름이 근사하게 꼭 맞다.
중앙시장 소고기 골목과 미로예술시장
강원도라는 지명은 강릉과 원주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예로부터 한양과 강원도를 연결하는 거점으로 사람과 물자가 활발히 교차하던 원주에서 시장도 번성했음은 당연한 일. 지금까지도 다양한 시장이 특색있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원주중앙시장 소고기 골목에는 횡성에서 들여온 치악산 한우를 화력 좋은 숯불에 직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옛 정취를 간직하며 맛으로, 정으로 오랜 시간 시장 골목을 지켜온 곳. 미로예술시장이라 부르는 시장 2층은 판매와 체험이 이뤄지는 시장 속 놀이터 같은 공간으로 젊은 상인들의 즐거운 열정을 만날 수 있다.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반곡역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와 사람 없는 간이역이 1940년부터 맡아온 임무를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올해 1월에 폐선된 반곡역부터 치악역까지 구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하려는 것. 아픈 철도의 역사는 간직하는 것이 좋겠다. 일제강점기 목재 수송을 위해 지어진 반곡역 그리고 일명 똬리굴로 불리는 금대1터널과 백 척이 넘는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백척교는 우리 조선 노동자들의 고된 노역과 수많은 희생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주말 오후, 선로를 따라 걸으며 곧 사라질 한가롭고 고요한 풍경을 즐기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낭만적인 가을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지금 반곡역으로 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