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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 전쟁영웅
5월
이달의 독립운동
이달의 독립운동, 전쟁영웅
3.1운동 이후 신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이끄는 여성운동이 사회운동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1920년대 초중반에 기독교계, 민족주의계, 사회주의계의 여성운동이 본격화했고 1927년, 마침내 여성운동계 전반을 아우르는 근우회가 탄생했다. 근우회는 일본, 중국, 미국 유학파 여성들이 주축이 됐고 전주지회를 시작으로 국내외에 총 69개의 지회를 조직하며 전국적 조직을 갖춘 여성운동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조선 여자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 도모를 강령으로 한 근우회는 강습회와 토론회, 순회강연 등을 펼치며 여성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경찰의 압박과 내부 노선 갈등으로 소멸의 길을 걷게 됐다.


이달의 전쟁영웅
이달의 독립운동, 전쟁영웅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종합학교 제30기로 입교한 도태철 중위(전투 당시 소위)는 1951년 9월 소위로 임관 후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국군 제6사단은 중부전선을 담당하던 미 제9사단의 우익 부대로 강원도 김화군 일대에서 북상 중이었다.
1951년 11월 17일 새벽, 그는 북한강 도하를 위한 정찰 임무를 맡아 소대원과 함께 적진에 침투했고 중공군의 기관총 진지를 발견했다. 소대원들에게 좌표를 연대에 전달할 것을 지시하고 홀로 적진 깊숙이 향한 도 중위는 안타깝게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정찰 정보 덕에 제7연대는 도하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전략적 요충지인 949고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6월
이달의 독립운동
이달의 독립운동, 전쟁영웅
1926년 6월 10일 순종 인산일에 서울에서 중등학교와 전문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이다. 3.1운동과 같은 대규모 시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며 대비했지만 인산 행렬에서 튀어나온 학생들은 격문을 뿌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500~600명의 학생이 이날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 일본은 사건 축소를 위해 전원 처벌방침을 수정하고 권오설, 박내원 등에게만 징역형을 선고했다.
6.10만세운동은 3.1운동을 계승한 독립운동으로 사회·민족 주의자의 협동전선인 신간회 결성의 토대가 됐으며 학생층이 항일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학생들의 조직화로 이어져 1929년 전국적인 학생독립운동을 이뤄냈다.


이달의 전쟁영웅
이달의 독립운동, 전쟁영웅
6.25전쟁이 발발하고 중서부 전선의 전황이 급격히 불리해지자 육군사관학교는 생도들로 1개 대대를 편성해 경찰대대와 함께 남침한 적을 격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임관을 보름 앞둔 1기생과 입교한 지 25일밖에 되지 않은 2기생 등 생도 539명은 교육훈련을 중단하고 ‘생도전투대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부족한 훈련과 빈약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포천, 의정부에서 한강선까지 북한군을 열흘간 저지했고, 13명의 생도는 서울에 남아 ‘불암산 유격대’를 결성해 끝까지 적에 맞서 싸웠다. 이 과정에서 생도 245명이 전사하는 등 큰 희생을 치렀지만, 생존한 생도들은 조기에 임관해 주요 전선의 소대장으로 투입돼 6.25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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