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은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곳, 무심코 지나쳤던 곳이 우리에게 뜻밖의 휴식과 즐거움, 깨달음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몰랐던 논산을 만나러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떠나본다.
1900년대 개화기 서울을 만나다
육군훈련소가 있어 논산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많아도 논산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오래된 역사와 새로운 명소가 공존하는 논산에서 첫 번째로 여행객의 발길을 끄는 곳은 ‘선샤인랜드’. 이곳은 개화기 서울의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해 놓은 ‘선샤인 스튜디오’와 1950년대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풍경의 ‘1950스튜디오’, VR기술 등을 활용한 ‘밀리터리 체험관’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다. 특히 선샤인 스튜디오는 논산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제작사가 공동투자해 조성한 국내 최초의 민관합작 드라마 테마파크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된 1900년대 초 한성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격변과 혼돈의 시기답게 마차와 전차, 한옥과 호텔이 공존하는 거리에는 두 주인공의 만남이 시작된 홍예교, 글로리 호텔, 구동매의 집, 불란셔 제빵소, 한성전기회사 등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어 드라마의 여운을 간직한 이들에게 반가운 추억을 선사한다. 글로리 호텔로 들어서면 카페 ‘가배정’은 지금도 영업 중이고, 애플tv에서 제작해 뜨거운 호평을 받았던 드라마 ‘파친코’에서 주인공이 양복을 맞추던 의상실은 개화기 의상과 소품을 대여하는 공간으로 운영해 누구나 모던걸, 모던보이로 변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한성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어 고운 한복차림으로 방문해 자신만의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이곳의 미덕은 눈길을 사로잡는 외관뿐만 아니라 건물마다 우리 역사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속에서 위태롭던 조선에서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힘쓰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의 치열했던 발자취를 돌아보게 된다.
계백장군의 충혼이 머무는 곳
흘러온 시간과 차곡차곡 쌓인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금강 유역의 넓고 기름진 땅에 자리한 논산평야는 백제의 수도인 사비(지금의 부여)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당시 논산의 지명은 ‘황산’. 백제의 명운을 건 마지막 전쟁인 ‘황산벌 전투’가 펼쳐졌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는 승리를 기억하지만, 패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장군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이곳에 있다. 백제 말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의 5만 대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최후를 마친 계백장군이다. ‘살아서 적의 노비가 되느니 죽음만 같지 못하다’라고 말한 그는 비장한 각오로 나당 연합군과 맞서 싸웠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황산벌 전투는 놀랍게도 4전 4승이라는 반전을 이뤄냈지만, 절대적인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했고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 또한 그렇게 끝났다. 장군의 충혼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황산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성된 계백장군 유적지에는 기개 넘치는 모습의 계백장군 동상이 이곳을 지키는 듯 세워져 있고 조금 더 가면 계백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인 충장사와 묘소가 안치돼 있다. 황산벌 전투를 비롯해 군사 복식과 무기 체계 등 백제의 군사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백제군사박물관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내년 1월 중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대둔산 맑은 물줄기를 품은 탑정호
계백장군 유적지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충남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인 탑정호가 있다. 해가 빠르게 떨어지는 겨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탑정호는 해가 질 때 더욱 아름다운 명소이기에 하루 동안의 논산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장소다. 탑정호를 가로지르는 길이 600m의 출렁다리는 논산의 랜드마크로 손색없지만, 물 위로 걷기 좋게 마련된 데크길이야말로 논산을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장으로 기억하게 하는 힐링 명소가 되어준다.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과 깨끗한 자연 덕분에 새롭게 만끽할 수 있었던 논산에서의 여행.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한 논산은 더욱더 탐스럽게 영글어갈 것이다. 충남 논산 _Travel Tip_ 향긋한 유혹, 논산 딸기 탑정호 출렁다리 북문에 자리한 논산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역 농민들이 생산은 물론 포장과 가격, 진열까지 책임지는 유통구조로 지역 주민들이 믿고 찾는 특산물 매장이다. 특히 당일 밭에서 갓 따온 딸기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맛과 향을 자랑한다. 50년 재배역사를 가진 딸기 최대 생산지답게 바로 옆에는 딸기테마관이 있는데, 딸기를 테마로 한 다양한 놀이 체험이 알차게 꾸며져 딸기 삼매경에 빠진 어린아이들로 북적인다. 곡식 대신 문화를 채운 ‘연산문화창고’ 논산 연산면 마을은 연산역이 옆에 있어 사람과 물자가 들고 나기 편리했던 덕에 커다란 곡물창고가 채워지고 비워지며 논산의 풍요를 전국에 전하는 호시절을 보냈다. 세월이 지나 쓰임을 다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곡물창고에 곡식 대신 문화를 채웠다. 예술학교, 카페, 다목적홀 등 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연산문화창고에서는 시기별로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역 농부의 제품도 전시한다. 사람을 모으는 건 곡식만이 아니다. 특별하고 재미있으면 사람이 온다. 시간과 문화를 채워 넣은 기찻길 옆 문화창고가 조용한 동네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다., 청렴한 선비정신의 표상, 명재고택 조선 숙종 때의 학자 윤증(1629~1712) 선생이 인품이 묻어나는 명재고택은 초가집에서 지내는 스승과 아버지를 보다 못해 제자들과 아들이 지어준 선비의 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명재고택은 화려하지 않아도 품격이 있다. 가옥을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수호신 같은 고목이 서 있고 넓게 펼쳐진 장독대와 초가가 예스러운 정취를 더해준다. 고택에는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선비정신에 후손이 정성을 더한 고택에서 숙박 체험도 가능하다. 긴 세월을 품은 고택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